莊子 雜篇 23. 庚桑楚(경상초) 2. 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말라.
莊子 雜篇 23. 庚桑楚(경상초) 2. 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말라.
南榮趎蹴然正坐曰(남영주축연정좌왈)
남영주가 크게 감동하여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若趎之年者已長矣(약주지년자이장의)
“저처럼 이미 나이가 든 사람은
將惡乎託業以及此言邪(장악호탁업이급차언사)
어떻게 수양을 해야 말씀하신 것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庚桑子曰(경상자왈)
경상초가 말했다.
全汝形(전여형)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하고
抱汝生無使汝思慮營營(포여생무사여사려영영)
자신의 삶을 보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십시오.
若此三年(약차삼년)
그렇게 삼 년만 지나면
則可以及此言矣(칙가이급차언의)
내가 말한 것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目之與形(목지여형)
“눈의 형체로 말하자면
吾不知其異也(오불지기이야)
장님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而盲者不能自見(이맹자불능자견)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耳之與形(이지여형)
귀의 형체로 말하자면
吾不知其異也(오부지기이야)
귀머거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而聲者不能自聞(이성자불능자문)
귀머거리는 듣지 못합니다.
心之與形(심지여형)
마음의 형체로 말하자면,
吾不知其異也(오부지기이야)
미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而狂者不能自得(이광자불능자득)
미친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形之與形亦辟矣(형지여형역벽의)
형체와 형체들은 서로 비슷합니다.
而物或間之邪(이물혹간지사)
그런데도 기능에는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물건이 그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기 때문입니까?
欲相求而不能相得(욕상구이불능상득)
도를 추구해 보려 해도 도를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今謂趎曰(금위주왈)
지금 제게 말씀하시기를
全汝形(전여형)
‘형체를 완전히 하고,
抱汝生(포여생)
삶을 보전하며,
勿使汝思慮營營(물사여사려영영)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趎勉聞道耳矣(주면문도이의)
저는 억지로 도에 관해 듣기는 하였지만 겨우 귀에 들어만 왔을 뿐입니다.”
庚桑子曰(경상자왈)
경상초가 말했다.
辭盡矣(사진의)
말로는 다 설명되었습니다.
奔蜂不能化藿蠋(분봉불능화곽촉)
“작은 나나니벌은 큰 벌레를 자기 새끼로 길러내지 못하고,
越鷄不能伏鵠卵(월계불능복곡란)
작은 월나라 닭은 큰고니의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지만,
魯鷄固能矣(로계고능의)
노나라의 큰 닭은 그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鷄之與鷄(계지여계)
닭과 닭을 놓고 볼 때
其德非不同也(기덕비부동야)
그 덕은 모두가 같습니다.
有能與不能者(유능여불능자)
그런데 한편은 가능하고 한편은 가능하지 못한 것은
其才固有巨小也(기재고유거소야)
그들의 재능에 본시부터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吾才小(금오재소)
지금 나의 재능은 작아서
不足以化子(부족이화자)
당신을 교화시킬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子胡不南見老子(자호불남견노자)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南榮趎贏糧(남영주영량)
남영주가 양식을 챙겨 짊어지고,
七日七夜至老子之所(칠일칠야지노자지소)
칠일 밤낮이 걸려 노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子自楚之所來乎(자자초지소래호)
“당신은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南榮趎曰唯(남영주왈유)
남영주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子何與人偕來之衆也(자하여인해래지중야)
“어째서 함께 온 사람들이 그리도 많습니까?”
南榮趎懼然顧其後(남영주구연고기후)
남영주는 놀라며 그의 뒤를 돌아보았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子不知吾所謂乎(자부지오소위호)
“내 말뜻을 모르겠습니까?”
南榮趎俯而慙(남영주부이참)
남영주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다가
仰而歎曰(앙이탄왈)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今者吾忘吾答(금자오망오답)
“지금 저는 대답할 말을 잊었습니다.
因失吾問(인실오문)
그래서 질문하려던 말도 잊었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何謂也(하위야)
“무슨 뜻입니까?”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不知乎(부지호)
“제가 알지 못한다면
人謂我朱愚(인위아주우)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할 것이고,
知乎(지호)
제가 많이 안다면
反愁我軀(반수아구)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不仁則害人(불인칙해인)
어질지 않으면 곧 남을 해치게 될 것이고,
仁則反愁我身(인칙반수아신)
어질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不義則傷彼(불의칙상피)
의롭지 않으면 남에게 해를 가할 것이고,
義則反愁我己(의칙반수아기)
의롭고 보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我安逃此而可(아안도차이가)
어떻게 해야 이런 처지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此三言者(차삼언자)
이 세 가지가
趎之所患也(주지소환야)
제가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顧因楚而問之(고인초이문지)
경상초의 소개로 선생님께 이것을 물으려고 왔습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向吾見若眉睫之間(향오견약미첩지간)
“좀 전에 나는 당신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吾因以得汝矣(오인이득여의)
당신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今汝又言而信之(금여우언이신지)
당신의 말을 듣고 나의 추측이 확실한 것을 알았습니다.
若規規然若喪父母(약규규연약상부모)
당신은 골똘히 앉아서 고민하기를 자기 부모를 여읜 것처럼 하고,
揭竿而求諸海也(게간이구제해야)
장대를 들고서 바다 깊이를 재려는 사람처럼 하고 있습니다.
女亡人哉(여망인재)
당신은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입니다.
惘惘乎(망망호)
멍하니
汝欲反汝情性而無由入(여욕반여정성이무유입)
당신은 당신의 성정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으니,
可憐哉(가련재)
참으로 안됐습니다.”
南榮趎請入就舍(남영주청입취사)
남영주는 노자 밑에 머물기를 자청하여,
召其所好(소기소호)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추구하고,
去其所惡(거기소악)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자
十日自愁(십일자수)
열흘만에 근심이 멎었다.
復見老子(복견노자)
그리고 나서 노자를 만나니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汝自酒濯(여자주탁)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熟哉鬱鬱乎(숙재울울호)
원숙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하군요.
然而其中津津乎猶有惡也(연이기중진진호유유악야)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에 얼마간의 악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夫外韄者不可繁而捉(부외획자불가번이착)
밖의 일에 마음이 얽매어 있는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將內揵(장내건)
안으로 마음의 작용을 닫아야 합니다.
內韄者不可繆而捉(내획자불가무이착)
자기 안의 마음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뒤엉키어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將外揵(장외건)
밖으로 보고 듣는 것을 닫아야 합니다.
外內韄者(외내획자)
밖이나 안으로 얽매여 있는 자는
道德不能持(도덕불능지)
도덕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而況放道而行者乎(이황방도이행자호)
그러니 어찌 위대한 도를 따라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里人有病(리인유병)
“마을 사람이 병들어
里人問之(이인문지)
다른 사람이 문병을 갔을 때,
病者能言其病(병자능언기병)
앓고 있는 사람이 그의 병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然其病病者(연기병병자)
그의 병을 병으로 여기는 사람은
猶未病也(유미병야)
아직 대단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若趎之聞大道(약주지문대도)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위대한 도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譬猶飮藥以加病也(비유음약이가병야)
마치 약을 먹음으로써 병을 도지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趎願聞衛生之經而已矣(주원문위생지경이이의)
저는 삶을 보양하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老子曰(노자왈)
노자가 말했다.
衛生之經(위생지경)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能抱一乎(능포일호)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能勿失乎(능물실호)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能無卜筮而知吉凶乎(능무복서이지길흉호)
점치는 것에 의해 자기의 길흉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能止乎(능지호)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能已乎(능이호)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能舍諸人而求諸己乎(능사제인이구제기호)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能翛然乎(능소연호)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能侗然乎(능동연호)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能兒子乎(능아자호)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兒子終日嗥而嗌不嗄(아자종일호이익불사)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和之至也(화지지야)
그것은 자연과 지극히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終日握而手不掜(종일악이수불예)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共其德也(공기덕야)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終日視而目不瞚(종일시이목불순)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데
偏不在外也(편불재외야)
밖의 물건에 대해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行不知所之(행부지소지)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居不知所爲(거부지소위)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與物委蛇(여물위사)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而同其波(이동기파)
자연의 물결에 자신을 맡깁니다.
是衛生之經已(시위생지경이)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입니다.”
南榮趎曰(남영주왈)
남영주가 말했다.
然則是至人之德已乎(연칙시지인지덕이호)
“그렇다면 이것이 지극한 사람의 덕이라는 것입니까?”
曰非也(왈비야)
노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是乃所謂氷解凍釋者(시내소위빙해동석자)
이것이 바로 어름이 풀려 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상태를 얘기한 것이니
能乎(능호)
가능한 것인저
夫至人者(부지인자)
지인이란
相與交食乎地而交樂乎天(상여교식호지이교락호천)
사람들과 더불어 땅 위에 함께 어울려 살고, 자연을 함께 즐기는 사람입니다.
不以人物利害相攖(불이인물리해상영)
사람과 물건이나 이익과 피해 때문에 남과 다투지 않으며,
不相與爲怪(불상여위괴)
남들에 비해 괴상한 짓을 하지도 않고,
不相與爲謀(불상여위모)
어떤 모의도 하지 않고,
不相與爲事(불상여위사)
어떤 일도 이루려 들지 않습니다.
翛然而往(소연이왕)
자연스럽게 갔다가
侗然而來(동연이래)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옵니다.
是謂衛生之經已(시위위생지경이)
이것을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라고도 말합니다.”
曰然則是至乎(왈연칙시지호)
남영주가 말하기를, “그러면 그것으로 극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曰未也(왈미야)
노자가 말하기를,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吾固告汝曰(오고고여왈)
내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기를
能兒子乎(능아자호)
아이와 같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兒子動不知所爲(아자동불지소위)
아이란 움직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行不知所之(행부지소지)
걷지만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身若槁木之枝而心若死灰(신약고목지지이심약사회)
몸은 마른 나무의 가지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습니다.
若是者(약시자)
이런 사람에게는
禍亦不至(화역부지)
재난도 닥칠 수 없고,
福亦不來(복역불래)
행복도 찾아올 수 없습니다.
禍福無有(화복무유)
재난도 행복도 있지 않은데
惡有人災也(악유인재야)
어찌 사람의 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