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五 克己 27.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말라

강병현 2016. 10. 3. 15:05

卷五 克己 27.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말라

 

 

()

묻기를,

不遷怒(불천노) 不貳過(불이과)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란,

何也(하야)

무엇입니까?

語錄有怒甲不遷乙之說(어록유노갑불천을지설)

<어록(語錄)>에는 갑에 대하여 노한 일을 을에게

옮기지 않는다고 쓰여 있습니다만,

是否(시부)

이것은 옳은 말입니까?" 하니,

伊川先生曰(이천선생왈)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

"옳은 말이다"라고 대답 하였다.

()

또 묻기를,

若此則甚易(약차즉심이)

"이와 같이 하기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何待顔子而後能(하대안자이후능)

어찌 안자(顔子)만이 해낼 수 있다고 하십니까?" 하니,

()

말씀 하시기를,

只被說得粗了(지피설득조료)

"다만 저것을 서툴게 헤아려서 하는 말이다.

諸君便道易(제군편도역)

제군(諸君)들은 다 쉬운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此莫是最難(차막시최난)

이것은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須是理會得因何不遷怒(수시리회득인하불천노)

모름지기 이치를 깨달아서 노한 것을 옮기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如舜之誅四凶(여순지주사흉) 怒在四凶(노재사흉)

순 임금이 사흉(四凶)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은, 사흉(四凶)의 죄에 노한 것이지,

舜何與焉(순하여언)

() 임금의 사심(私心)이 아니다.

盖因是人有可怒之事而怒之(개인시인유가노지사이노지)

대개 사람은 화낼 일이 있어야만 노여워 하는 것이다.

聖人之心(성인지심) 本無怒也(본무노야)

성인의 마음은, 본래 노여움이 없다.

譬如明鏡(비여명경)

비유하건대 맑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好物來時(호물래시) 便見是好(편견시호)

좋은 물건일 때에는, 또한 그것이 좋게 보이고,

惡物來時(악물래시) 便見是惡(편견시악)

악한 물건일 때에는, 또한 그것이 악하게 보인다.

鏡何嘗有好惡也(경하상유호악야)

거울이 어찌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겠는가?

世之人(세지인) 固有怒於室而色於市(고유노어실이색어시)

세상 사람들은, 집에서 화나는 일이 있으면 시장에 나가서 얼굴에 나타내고,

且如怒一人(차여노일인) 對那人說話(대나인설화)

또 어떤 사람에게서 노여운 일이 있으면, 또 타인에게 말하는 것과 같으니,

能無怒色否(능무노색부)

능히 노여운 빛을 없앨 수 있겠는가?

有能怒一人而不怒別人者(유능노일인이불노별인자)

능히 한 사람에게 노여운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화내지 않는 자가 있다.

能忍得如此(능인득여차) 已是煞知義理(이시살지의리)

능히 참아서 이와 같이 하는 자는, 곧 의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若聖人因物而未嘗有怒(약성인인물이미상유노)

성인이 사물로 인하여 일찌기 노여움을 갖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此莫是甚難(차막시심난)

이와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君子役物(군자역물) 小人役於物(소인역어물)

군자는 만물을 지배하고, 소인은 물()에 지배를 당한다.

今見可喜可怒之事(금견가희가노지사)

지금 기뻐하고 노여워할 일을 보고,

自家著一分陪奉他(자가저일분배봉타) 此亦勞矣(차역노의)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 그 일에 따른다면, 이 또한 수고로운 것이다.

聖人之心(성인지심) 如止水(여지수)

성인의 마음은, 정지한 물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씨유서(程氏遺書)>18(第十八篇)

 

불천노(不遷怒)란 말은 화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화풀이를 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논어>옹야편에서 말하기를, "안연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설득조료(說得粗了)라는 말은 대체적으로 거칠고 조악하게 헤아려하는 말이라서 설득하기에 어렵다는 뜻이다. 순지 주사흉(舜之誅四凶)이란 말은, ()임금이 네 사람의 죄를 벌하였다는 말로, <서경> 순전편(舜典篇)에 나오는 말이다. 곧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귀양을 보내고, 환도(驩兜)를 숭산(崇山)에 귀양 보냈으며, 삼묘(三苗)를 삼위산(三危山)으로 내쫓고, ()을 우산(羽山)에서 벤것을 말한다. 이 대목은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지 않고, 항상 마음을 평정(平靜)에 두어서 남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으며, 한 번 범한 과실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이청 선생의 말이다. 그 예로 안자(顔子)가 행한 불천노 불이과(不遷怒不貳過)는 성인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렵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