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Tiaras in History (역사속의 티아라)

강병현 2007. 10. 14. 03:03
출처 : http://blog.naver.com/plath99/100033833689

 

 여성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티아라 (tiara). 

 

결혼식 날 쓸 티아라를 찾는 동안 세계 각국에 있는 유명한 티아라를 모아보았다. 이 세상의 여성 중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장 다양하고 값비싼 티아라 컬랙션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많은 티아라들은 머리장식 외에도 목걸이로 할 수 있겠끔 만들어졌다.  대부분 티아라는 왕가 또는 귀족 집안의 소유라고 여겨지게 때문에, 아무리 여왕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왕가의 보삭은 자기 마음대로 팔거나 선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귀족들과 왕가의 여인들은  집안의 보석과 자기 개인의 보석을 분류하여 소유하곤 했다.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이 1804년 대관식에 착용했던 다이아몬드 티아라.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소유였으나 그녀의 딸 호텐스 (Hortense)가 네덜란드의 왕비가 되자 호텐스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호텐스는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장식된 이 티아라를 루이-필립 (부르봉 왕가의 후예로, 훗날 프랑스 왕이 된다)에게 팔았고,  루이-필립은 이 티아라를 그의 아내인 마리-아밀레 (Marie-Amélie)에게 선물하였다.  마리-아밀레는 이 티아라를  그녀의 손녀에게 물려주었고, 나중에 이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티아라는 기즈 공작부인(Duchesse de Guise) 의 소유가 되었다. 그녀의 후손은 이 티아라를 루브르 박물관에 팔게 되었다.

 

원래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의 소유였다고 알려진 이 티아라는 그녀의 친 손녀인 조세핀 공주가 1823년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 1세와 결혼하면서 스웨덴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훗날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로 장식된 이 티아라는 스웨덴의 찰스왕자 부처가 소유하게 되었고, 그들은 이것을 1937년 그들의 노르웨이의 황태자에게 시집간 딸인 마르타 공주가 첫 아들을 출산하자 딸에게 축하 선물로 선사하게 된다. 아직도 이 티아라는 노르웨이 왕가 소유이다.   

 

원래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의 소유였다고 알려진 이 티아라는 그녀의 친 손녀인 조세핀 공주가 1823년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 1세와 결혼하면서 스웨덴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조세핀의 아버지는 룩텐베르그 대공이었기 때문에 이 티아라는 룩텐베르그의 티아라(Leuchtenberg Sapphire Tiara ) 라고 불린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만들어졌다.

 

조세핀 공주가 1823년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 1세와 결혼하면서 스웨덴으로 건너오게 된 또 다른 티아라. 아직도 스웨덴 왕가의 소유이다.

 

 

프랑스 왕 루이-필립 (Louis-Philippe) 아내인 마리-아밀레 (Marie-Amélie) 왕비의 소유인 사파이어 보석 세트.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 소유이다. 이 유명한 티아라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와 진주로 장식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 (Prince Albert)이 그의 아내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티아라. 이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만들어진 티아라 외에도 알버트공은 많은 티아라를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손수 디자인 하곤 했다. 한때는 분실 됐다고 여겨지기도 했으나 최근 헤어우드 백작과 백작부인 (Earl and Countess of Harewood)이 이 티아라를 소유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853년에 만들어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오리엔탈 써클렛 (Oriental Circlet) 티아라. 이 티아라도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 (Prince Albert)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오팔 (opal)로 장식되어 졌으나, 빅토리아 여왕의 며느리 알랙신드라 왕비가 1902년 루비로 바꾸게 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팔이 불길한 보석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티아라는 아직도 영국 왕실의 소유.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1862년 그녀의 둘째 딸인 앨리스 공주가 헤세와 라인의 루이 왕자 (Prince Louis of Hesse and by Phine)와 결혼했을 때 결혼 선물로 선사한 티아라. 결혼 후 엘리스의 호칭은 헤세-다름스타트의 앨리스 (Alice of Hesse-Darmstadt) 가 되었기 때문에 이 티아라는 헤세의 티아라 (Tiara of Hesse) 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1870년 영국의 유명한 보석상 가랄드 (Garrard)가 폴티모어 남작부인 (Lady Poltimore)을 위해 만든 다이아몬드 티아라. 그의 남편 폴티모어 남작은 1872-1874에 빅토리아 여왕의 재무장관 이었다. 목걸이로 쓸 수 있고, 여러개의 작은 브롯치로도 변할 수도 있게끔 만들어진 이 티아라는, 엘리자베스 2세의 여동생 마가렛 공주가 1960년 결혼식에 쓴 머리 장식으로 유명하다. 결혼식 선물로 영국 왕실이 마가렛 공주를 위해 산 이 티아라는 마가렛 공주가 죽자, 재산새를 내기위해 그녀의 아들이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게 되었고, 2006년 우리나라 돈으로 15억에 낙찰되었다.


 

영국의 애드워드 7세의 맏딸이었던 루이즈 공주 (Princess Louise)가 썼던 다이아몬드 티아라. 그녀가 파이피 공작부인 (Duchess of Fife)이 되었기 때문에 이 티아라는 지금 Fife Tiara라고 불린다. 그녀의 1889년 결혼식에 그녀의 부모로 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은 파이피 가문의 소유이다.

 

영국의 다이애나 스팬서 (Diana Spencer)가 1981년  영국의 황태자인 찰스와의 결혼식에 썼던 스팬서 가문의 티아라. 1890년부터 스팬서 가문의 소유였던 이 티아라는 수백개의 다이아몬드와 은으로 만들어 졌으며, 결혼 후에도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이 티아라를 친정으로 부터 자주 빌려 썼었다.

 

블 라디미르 티아라 (Vladimir Tiara)라고 불리는 이 다이아몬드 머리 장식은 원래 러시아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고모인 블라디미르 대여공작의 소유였고, 1890년도에 만들어 졌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그녀는 자신의 보석들의 일부를 팔았다. 앨리자베스 2세의 친할머니 였던 매리 왕비가 이 티아라를 사게 되었고, 지금은 앨리자베스 2세 티아라 컬랙션 중 하나다. 원래는 다이아몬드와 진주장식으로 만들어졌으나 진주를 애메랄드로 바꾸어 달수있다.

 

영국의 애색스 백작부인(Countess of Essex)을 위해 까르띠에(Cartier)가 1902년에 만든 다이아몬드 티아라.

 

영국 포트랜드 공작 (Duke of Portland)의 부인 위니프레드 안나 (Winifred Anna)를 위해 까르띠에(Cartier)가 1902년에 만든 다이아몬드 티아라. 이 티아라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날 저녁, 약속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는 그의 아내와 대화를 할겸 (그리고 빨리 서둘라고 재촉도 할겸), 공작은 그의 부인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였다.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포트랜드 공작... 순간 공작부인의 방은 그녀와 하녀와 남편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공작이 의자 위에 놓인 이 티아라를 보지 못했던것. 덕분에 티아라는 산산히 조각났고, 공작은 엉덩이에 부상을 입고 만다. 다행히 티아라는 수선 되었으며, 공작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스페인 왕가의 대표적인 티아라.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으로 만들어진 이 머리 장식은 스페인의 왕 알퐁소 13세 (Alfonso XIII)가 1906년 영국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주 (Princess Victoria Eugenie,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 와 결혼했을때  그의 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준 것이다. 스페인의 보석 전문점 Ansorena 에게 주문 제작한 이 티아라는 Ansorena Fleur-de-Lys Tiara 라고 불린다. 아직도 스페인 왕가의 소유.

 

나폴레옹의 자손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 (Princess Marie Bonaparte)가 까르띠에 주문하여 1907년에 제작된 티아라. 다이아몬드와 프레티넘으로 만들어 졌다. 마리 보나파르트의 친할아버지 피에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Pierre Napoleon Bonaparte)는 나폴레옹의 조카였다. 마리 공주는 그리스의 왕자 죠지와 결혼하게 되고, 훗날 저명한 심리학자로 알려진 프로이드 (Freud)와 친분을 맺게된다.  프로이드가 나중에 나치의 탄압을 피해 독일에서 영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마리 보나파르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티아라의 디자인은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여성들의 머리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데이지 꽃을 본따 만든 티아라. 조지아 귀족이었던 아밤알랙 공주 (Princess Abamalek)를 위해 프랑스 보석점 Boucheron이 1907년 만들었다. 그래서 이 티아라는 아직도 Boucheron daisy leaves and flowers tiara라고 불린다. 훗날 아밤알랙 공주는  이 티아라를 그녀의 조카인 유고슬라비아의 왕자 폴 (Prince Paul of Yugoslavia)에게 물려주었고, 폴 왕자의 부인인 올가 공주 (Princess Olga)가 즐겨 썼었다. 지금은 그들의 자녀의 소유. 티아라 밑 둘레에 박힌 다이아몬드 들은, 올가 공주의 주문으로 덧붙여진 것이다.

 

영국의 에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에리자베스 왕비가 1923년 요크 공작 (훗날 그의 형 애드워드 8세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요크 공작은 영국 국왕 죠지 6세가 된다)과 결혼했을때 그녀의 아버지인 스트라스모어-킹혼 백작 (Earl of Strathmore and Kinghorne)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장미꽃을 본따 만든 이 티아라는 에리자베스 왕비의 친정집의 이름을 따라 Strathmore Rose Tiara라고 부른다.  지금은 에리자베스 2세의 소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가 자선 바자회옥션 (charity auction)에서 자수성 여러개를 한꺼번에 살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그때 산 자수성을 귀걸이, 티아라, 그리고 목걸이 세트로  만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메리 왕비는 자수성 보석세트를 딱 한번 공식 장소에서 쓴 후  다시는  쓰지 않았다. 훗날 그녀는 자수성 세트를 그녀의 며느리인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에게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앨리자베스 왕비는 한번도 이 보석 세트를 쓰지 않았고, 이 타아라와 다른 자수성 보석 세트는 앨리자베스 왕비가 죽은 후, 경매에 붙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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