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오디세우스와 칼립소..7년간의 사랑

강병현 2008. 9. 2. 16:16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의 귀향,

특히 귀향 막바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쓴 글이다.

전장에서 10년을 보낸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또다시 10년의 세월을 소모했다.

그 10년은 무엇보다 포세이돈 신의 방해로 인해 곤란과 간난에 찬 세월이었고,

힘겨운 생존투쟁을 했던 시기였다.

 

오딧세우스와 칼립소

 

오디세우스와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귀향길을 막은 존재들 가운데 유난히 여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유혹자였다.

 

여신(혹은 님프) 칼립소는 티탄족 아틀라스의 딸이라고도 하고,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이라고도 한다.

그녀의 이름은 '숨기는 여인'이란 뜻을 갖고 있다.

조국 이타카를 열렬히 그리워 하던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를 칼립소는

그녀의 이름의 의미에 걸맞게 7년 동안 감쪽같이 세상으로부터 숨겨놓았다.

물론 이러한 격리가 감옥 속에 가두어두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칼립소는 난파하여 자신의 섬으로 떠내려온 오디세우스가 자신과 함께 살기로 결심만 한다면 영생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훌륭한 잠자리와 먹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애틋한 사랑을 주었다.

 

 

J. brueghel, A Fantastic Cave Landscape with Odysseus & Calypso

(painted with Hendrick de Clerck)

 

17세기 플랑드르 얀 브뤼겔(피터 브뤼겔의 자손)이 그린

 <오디세우스와 칼립소가 있는 환상적인 동굴>은 칼립소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독특한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옛 유럽 귀족들의 피서용 돌집인 그로토를 크게 확대해놓은 듯한 동굴 안에는

 기화요초와 아름다운 과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만개한 꽃과 무르익은 과실은 농익은 사랑을 상징한다. 

천년만년을 그렇게 보내도 좋을

것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 땅, 그러나 오디세우스에게는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이 그리워진 오디세우스는

자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눈물로 뺨을 적셨다.

아테나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제우스가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오디세우스는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아르놀트 뵈클린 - 오딧세우스와 칼립소
 
오뒤세우스는 늘 그래왔듯이 바위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흐리고 벌겋게 핏발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울고 있었음에 분명했다.
칼립소는 슬픔을 억누르며 바닷가로 나갔다.
 칼립소는 슬픔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는 '떠날 것을'허락한다.. 
 
다음 날, 조그만 쪽배를 만들고, 제일 길고 곧은 전나무는 배 한가운데 세워 돛대로 삼았다.
나흘 동안 준비한 그는 닷새째가 되자 쪽배 밑에다 통나무를 깔고는 쪽배를 바다로 밀어 넣었다.
 
이윽고 둘은 마지막 입맞춤을 나누었다.
입맞춤이 끝났을 때 칼립소는 홀로 동굴 쪽으로 갔고,
오디세우스는 바다로 향했다.
돛은 칼립소가 보내 준 순풍에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주헌 책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