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ORI, Cristofano,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
이스라엘의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이 되었다.
앗시리아 왕 느부갓네살이 장수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송두리째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구약 제 2경전 유딧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전장을 휘두르던 적장의 운명은 한 미모의 과부의 손에 붙여졌다.
잠든 적장의 머리를 잘라 오자 용기를 얻은 이스라엘이 일어나서 대군을 물리친 것이다.
유딧서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이견이 많다.
줄거리 전체를 허구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바빌로니아 왕 느브갓네살이 유딧서에서 앗시리아 왕으로 나오고,
그가 파견했다는 장수 홀로페르네스의 이름이
어떤 사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부 유딧이 잠든 적장의 침소에 들어가서 목을 잘라 오는 이야기는
유대 민족이 주변국들에게 겪어야 했던 박해와 그들의 신의 도움으로
극복하는 고난에 대한 교훈의 소재를 각색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소재로 풍부한 그림들이 넘쳐난다.
성녀에서부터 악녀와 요녀의 모습으로 까지..
Sandro Botticelli(1445- 1510),
The Return of Judith to Bethulia, 1472
보티첼리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이미 적장의 목을 베어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한 손엔 적장 홀로페레느스의 목을 베었을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하녀가 이고 있는 것은 적장의 목이고,
그녀가 손에는 적장을 취하게 만들었을 술병이 들려 있다.
유디트가 돌아가는 발 아래로 장군의 죽음에 놀란
앗시리아 병사들이 허둥지둥 패퇴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살인의 장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515, Oil on canvas, 89,5 x 73 cm
Galleria Doria-Pamphili, Rome
by Tiziano Vecellio (1490~1576)
티치아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마치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받아든 살로메의 구도로 보인다.
얼핏 보아서 드러나지 않은 적장의 목은
마치 유디트의 연인이 편안히 누워 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디트의 하녀 역시 매우 어린 소녀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벤 당찬 여걸이라기보다는
부끄러움에 살며시 고개를 숙인 순결한 처녀의 형상에 가깝다.
조르조네
Judith
1504, Oil on canvas, trasferred from panel, 144 x 66,5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조르조네의 유딧은 붉은 옷을 걸쳤다.
과부의 묵은 태를 말끔히 벗고 적장을 유혹하기 위해서 단장을 차렸다.
홀로페르네스는 머리만 따로 남아서
유딧의 발 아래 뒹군다. 뱀의 머리를 밟은 마리아처럼,
패덕을 밟고 이기는 미덕의 승리가 유딧 도상에 적용되었다.
하녀는 보이지 않는다. 천막도 사라졌다.
앗시리아 진영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길목에 멈추어 선 유딧이 영웅적 자세를 취했다.
만테냐 모작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딧>
1490년 이후, 30.1 x 18.1 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워싱턴
유딧의 자세와 옷차림은 만테냐의 고전 취미를 드러낸다.
그리스 여인들이 입었던 흰색 키톤이 유딧의 어깨에서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고대 입상과 석관 부조에서 배운 콘트라포스토가
유딧의 영웅적 자세를 만들었다.
속옷의 주름이 몸뚱이의 숨은 윤곽을 드러내고,
그 위에 겹쳐 입은 겉옷이 발바닥에서 머리에 이르는 몸의 움직임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속옷 주름의 재투영하는 기법도 고대 조각의 유산이다.
Caravaggio (1573-1610)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딧>
1592~1596년 무렵, 144 x 195 cm
국립 고대 미술관, 로마
유디트의 표현이 카라바조에 이르면 모양새가 많이 달라진다.
드디어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홀로페르네스는 편안히 잠들어 있다가
유디트의 불의의 일격을 당하여 눈을 치켜뜨지만 이미 목은 절반을 잘려 나갔고,
피는 분수처럼 침대를 적시며 빠져나가는 그의 생명처럼 보인다.
그런데 적장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의 손을 보자.
적장의 머리털을 움켜쥐고 있는 그녀는 더러운 듯 한껏 몸을 뒤로 젖히고 있으며
칼을 쥔 손은 파리 한 마리로 잡아보지 않은 듯 보인다.
그녀를 뒤따라온 하녀 역시 매우 늙은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아무 하는 일없이 떨어지는 목을 냉큼 주워 담으려는 듯 포대를 들고 있다.
이런 사실적인 그림을 본 여행가 앤 밀러는
1770년 카라바조의 <유딧>을 보고 감상 한 토막을 적어 두었다.
"나는 화가가 직접 모델을 세워 두고 그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갑자기 진땀이 흐르고 욕지기가 치밀었다.
마치 눈앞에서 참수극이 펼쳐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목의 절개 자국, 버둥대는 몸뚱이, 잘린 동맥이 내뿜는 선혈... "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611-12 Oil on canvas, 158,8 x 125,5 cm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그런데 17세기에 이르러 우리는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유디트를 볼 수 있게 되는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의 작품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듯한 구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 생생함은 카라바조와 비교할 수도 없다.
유디트는 매우 건강한 팔뚝을 지닌 여인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카라바지오의 유디트처럼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지도 않다.
그녀는 매우 결연한 표정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털을 힘센 팔뚝으로 움겨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단단히 틀어잡고 있다.
성서에는 밖에서 기다리는 것으로 표현된 하녀 역시 저항하는 적장의 양팔을 내리누른다.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612-21 Oil on canvas, 199 x 162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보티첼리, 티치아노, 카라바지오와 아르테미시아의 차이는 단 하나 아르테미시아가 여성 화가였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에 있어
여성의 대상은 그야말로 꽃의 역할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관음증의 대상이었거나 아니면 남성을 위한 뮤즈가 되어 자신들의창조적
재능을 소진하는 것만으로 그 역할이 한정되어 있었다.
아르테미시아는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재발견된 화가였다.
그녀는 여성에게 제한된 역할을 뛰어넘은 최초의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위험천만한 적진 한 가운데에서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아르테미시아의 뼈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Artemisia Gentileschi,
<Judith and her Maidservant>
1612-1613 Oil on canvas, 114 x 93.5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그녀는 19세 때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화가였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 당하고 그 일로 인해 법정에 섰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7개월이나 계속된 재판에서 상대 남자인 타시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아르메시아를 음란한 여자로 매도한다.
결국 아르테미시아는 법정에서 자신의 순결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았고,
고문까지 받아야 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 아르테미시아가
맘껏 주체적인 여성,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발현시킬 수 있는 소재는 유디트였던 것이다.
이러한 애국 여걸 유디트의 단호함이
클림트의 손을 거치면서 나른하고 요염한 요부로 변한다.
Judith I, 1901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을 들고 지긋이 감긴눈과 발그레한 빰, 피처럼 붉은 입술..
드러낸 가슴과 배꼽..
클림트는 "다나에"에서 처럼 일체의 신화와 성서의 요소를 제거하고
"악녀" 또는 "요부"의 이미지로 유디트를 표현한다.
가냘프지만 지혜롭고 용감했던 과거의 유디트들과는 달리
클림트의 유디트는 뇌쇄적이며 관능적이다.
Judith II, 1909
'유디트Ⅰ'이 좀더 장식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운 모습에 집중했다면,
이 그림의 색채와 인물은
전형적인 아르누보풍으로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이 애국 여걸이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마치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의 요부로 돌변했다.
유디트 연작을 보면 모두 주인공의 눈동자가 풀려 있고
앞가슴도 공통적으로 드러내놓고 있고
입은 옷은 속이 들여다 보이거나 하늘거리는 관능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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