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나 명화의 주제를 보면 가끔 실소가 나온다.
남성 하나를 두고 왜 여성들끼리 언제나 투쟁적 관계에서
결국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이
마치 통속적인 드라마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웃을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다소 유치하고 통속적이나 이 만큼 인류와 가까운 주제도 없는 듯하니..
Anthony Frederick Sandys
사랑의 어두운 측면, 1867
질투...
연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악마와 손을 잡게 만드는 저주의 감정..
서태후는 전날 밤 황제를 모신 궁녀를 다음날 잡아
양팔과 양다리를 자르고 항아리에 몸통을 넣어 죽게 했다.
여성의 질투는 남성의 권력을 온전히 제 것으로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권력 암투처럼 보인다.
들라크루아
분노하는 메데이아, 1862
파리 루브르미술관
극단적인 질투는 자신과 상대를 해치고 종내는 사랑까지 파괴한다.
"모욕당한 여성보다 더 분노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콩그리브는 말한다.
메데이아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공주로 태어나 총명함과 신기한 마법을 지닌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황금양털을 훔치러
이야손이 오는데, 첫눈에 반한다.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가지기 위해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를 이용한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아손을 위해서 동생도 죽이면서
그를 위해 황금양털을 손에 쥐게 한다.
헌신적인 메데이아의 덕분으로
이아손은 무사히 코린트로 돌아와
10년의 기간 동안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나....
이아손은 테바이의 아름다운 왕녀 글라우케와 결혼하기 위해
메데이아를 버리게 된다.
권력욕과 더불어 새로운 여인에 대한 갈망으로 조강지처를 버리는 이아손..
.메데이아는 마법의 예복으로 글라우케를 죽이고
이아손의 대를 끊으므로써 복수를 하고자 하는 메데이아는
자신의 배로 낳은 두 자식까지 살해한다.
위 그림에서 메데이아는 두 자식을 죽이기 직전이다.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한손에는 단검을 쥐고
금방이라도 찌를 것 같은 긴박감이 넘친다.
어미이기보다는 한 남자의 연인으로 남고 싶었던 여인의 한이
화면 전체에 강렬하게 뿜어져 그 질투의 화산이 분출되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질투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신이 바로 헤라다.
물론 헤라의 질투는 당연하기도 하다.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대는 남편 제우스 덕분에 헤라는 편한 날이 없었다.
제우스와 헤라 - 애증의 관계
헤라 Hera(Juno)
6월, 즉 June은 결혼의 계절이며
이것은 결혼의 여신 주노(Juno)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여신은 제우스의 아내로서, 그리스에서는 헤라(Hera)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정작 헤라 자신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헤라의 남편인 제우스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결혼의 여신인 헤라는 자기 자신의 결혼 생활에 흠집을 내는
불륜의 연적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제우스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과 그의 자식들은 헤라의 모진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이오는 헤라의 질투에 쫓겨 그리스에서 이집트까지 가야 했으며
제우스의 사생아 헤라클레스는 평생을 모진 고생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스킬라 (Scylla)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메시나 해협에 출몰하던 바다의 괴물.
원래는 아름다운 요정으로, 포르키스와 크라타이스의 딸이었다.
스킬라는 바다에서 다른 요정들과 나날을 보내며,
구혼자들을 모두 뿌리치고 있었다.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가 그녀를 사랑하여 키르케에게 미약을 달라고 했으나,
그런데 키르케는 자신을 찾아온 글라우코스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키르케는 그 자리에서 글라우코스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글라우코스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고,
격노한 키르케는 스킬라가 자주 목욕을 하는 샘에다 마법의 약을 풀어
스킬라를 괴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후 스킬라는 3중의 이빨을 가진 입과 6개의 머리,
12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질투"
그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지만 내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
그와 너가 마주 앉아 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 질 때면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용기를 잃고 작아지네.
흠칫 너를 훔쳐보는 내 목소린 힘을 잃고
혀는 굳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내 연약한 피부아래 뜨겁게 끓어오르는 피는
귀에 들리는 듯 맥박 치며 흐르네.
내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사포
사포 Sappho : 고대 그리스의 최고의 시인
세익스피어는 질투를 오델로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 질투는 파리한 눈빛을 한 괴물로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할 뿐 만아니라
먹기 전에 마냥 조롱하는 그런 놈이다.
깊이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의심을 하고,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더욱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는 정말 하루하루가 얼마나 저주스럽겠는가?"
Giovanni Battista Gaulli
아도니스의 죽음
아도니스를 사랑한 비너스.
그러나 꽃미남 이도니스를 사랑한 여인이 또 있었으니..
그녀는 지하의 제왕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였다.
둘이 밤낮없이 놀아나자 이를 시기한 페르세포네는
아프로디테의 애인인 아레스(Ares ; 전쟁의 신)에게 둘의 관계를 일러 바치고,
이에 불같은 질투심에 사로 잡힌 아레스(비너스와 아레스는 당시 열애중이었다)는
멧돼지로 변신하여 비너가 잠시 올림포스에 올라간 사이
사냥하는 아도니스를 받아 죽여 버린다.
아도니스의 비명소리를 듣고 아프로디테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때는 늦었다..
아도니스의 옆구리에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이미 죽음의 손길이 아도니를 끌고 지하세계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도니스의 죽음에 애통하는 아프로디테의 눈물에서 장미가 태어났다고 하니,
여신의 깊은 상심을 알 만하다.
BROC, Jean
The Death of Hyacinth, 1801
휘아킨토스(Hyacinth)는 그리스 남부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운동과 전쟁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들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중 아폴론과 서풍의 신 제퓌로스가 유난히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권력이 가장 센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에게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아폴론과 휘아킨토스가 늘 함께 다니던 어느 날
둘이는 들판에서 원반던지기를 했다.
구름 위에서 둘의 모습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제피로스는
아폴론의 원반에 대고 서풍을 강하게 불어 버렸다.
강한 바람에 내리 날린 원반은 휘아킨토스를 후려쳤고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리던 휘아킨토스는 결국 풀밭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맞아 히야킨토스가 숨을 거두고 있다. 히야킨토스가 죽자,
아폴론은 늘 하던 버릇대로 그를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시킨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태어난 꽃이 바로 히야신스인데,
그 꽃의 입에는 히야킨토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폴론의 한탄('AI')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알마 테티마
Unconscious Rivals, 1893
Bristol Museum and Art Gallery.
라이벌. 지금 어떤 다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작품 제목이 <라이벌>이다.
고대 로마인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이 매력적인 두 여인이 경쟁 관계에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사랑 때문일 것이다..
지중해의 찬란함과 푸르름, 그리고 아름다운 꽃과 조각들로 장식된 실내지만,
분명 이 여인들 가슴에는 사랑의 울렁거림과 그림움, 질투가 흐르고 있다.
삼각관계의 다른 한 꼭지점, 남자는 어디 있나?
발만 보이는 오른쪽 대리석 조각이 지금 보이지 않는 그 남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마치 가만히 앉아 두 여인의 경쟁을 내려보며 즐기는 듯한 대리석 조각..
Anthony Frederick Sandys, 1867
'지나친 사랑'은 이처럼 화를 부른다.
지나친 열정에 못지않게 사랑에 무관심한 것 또한 비극을 낳는다.
(오르페우스와 나르키소스의 경우처럼)
이렇게 신화나 전설의 사랑에는 지나치게 모자란 열정과 지나치게 넘치는 열정,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듯하다.
“질투를 느끼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
이 말은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잣대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필요적으로 따르는 소유욕은 집착을 낳고,
그 집착은 곧 상대에 대한 질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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