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절로 로마의 역사를 바꾼 여인..루크레티아
로물루스 형제의 전설에 의해 세워진 고대 제정로마는
한 여인의 한 맺힌 절규로 인하여 무너지는 계기를 맞는다.
VERONESE, Paolo Lucretia, 1508
고대 로마 최후의 왕 타르키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에게 능욕을 당하자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결을 하는 장면이다.
루크레티아 Lucretia
루크레티아는 BC 6세기경 제정로마시대의 콜라티누스의 아내로
미모와 정절로 이름난 여인이다. 모든 로마의 남성들에게 뮤즈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로마 마지막 황제의 잔인한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게
강간을 당한 뒤 그 모멸감을 참지 못하고
남편과 아버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자살의 길을 택했다.
그녀는 단검으로 심장을 찌르기 전에 남자들에게 그녀의 정절을 위해 복수해주기를 간청했다.
결국 그녀의 자살에 분노한 민중은 봉기를 일으켜 타르퀴니우스를 폐위시키고 로마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BC. 509년경, 사실은 독립의 꿈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다.)
Andra Casali - The death of lucretia
고대 이탈리아는 '로마를 중심으로한 라틴 족'보다는 '에트루리아'족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족은 지중해를 무대로 주로 무역을 하던 민족으로
그리스와의 무역으로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로마자로 알고 잇는 알파벳 역시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인들에게 가르쳐 준 글자이다.
문화, 예술, 건축 등에 걸쳐 지금껏 알고 있는 로마의 것이 사실은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전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정치적으로 로마는 북쪽의 강력한 에트루리아인들의 속국이었다.
하지만 교통의 중심지, 무역항구로서 로마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로마인들은 마침내 그토록 설움과 압박을 벗어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반감이 날로 거세져 갔다.
티에폴로 - 루크레티아와 타르퀴니우스
그러던 중 로마 공화정 이전의 마지막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의 사위로 왕을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그는 선왕과 친했던 인물들을 모두 숙청하고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일으켜 여론을 돌린다.
Tiziano, Rape of Lucretia 1568-71
로마가 이웃 국가 아르데이아와 전쟁을 치루고 있을 때의 일이다.
왕의 아들 섹스투스와 그의 동료들은 자기 마누라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자기 아내의 정숙함에 확신을 가진 콜라티누스는 각자 로마로 돌아가
아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오자고 제안했다.
다른 사람들의 부인들이 하나 같이 주연을 베풀며 흥청거리고 있는 반면,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는 옷감을 짜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섹스투스(콜라티누스와 친척관계이다)는 루크레티아의 근면성실함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에도 마음을 빼앗겼다.
콜라티누스가 전장으로 되돌아간 며칠 뒤 섹스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침실로 침입하여
반항할 경우 그녀와 하인들을 죽이는 것은 물론 남편에게도 보복하겠다고 협박해서..
마침내 그녀를 겁탈했다.
Simon Vouet, Lucretia And Tarqui, 1620
다음 날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 남편의 친구인
르투스(루키우스 주니우스 부르투스, 시저의 부르투스와 다른 사람이다)에게
이 사실을 모두 털어놓고는 가슴에 비수를 꽂아 자결하였다.
분노한 부르투스는 광장에 시민들을 모아놓고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 주자
안그래도 왕위찬탈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았고
독립의 염원에 불타있던 로마의 젊은이들의 가슴에 기름을 붇는 결과가 되었다.
Tiziano Suicide of Lucretia
151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마침내 로마는 독립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에트루리아인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왕이 없는 나라' 즉 새로운 공화정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부르투스는 왕과 그 일가를 로마에서 쫓아내고
로마의 새로운 지도자, 즉 집정관(2명중 한명)이 되어 공화정의 시작 뿐만아니라
사실상의 로마의 독립을 완성하여 향후 천년로마제국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귀도(구이도) 레니- Suicide of Llucretia
미모와 색으로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여인상 (경국지색) 은 많이 봤지만,
정절로 또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것은 아마 루크레티아가 최초일 것이다.
이 내용은 비록 정확한 역사적 사료는 아니지만..
미술사에서는 이처럼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루크레티아의 능욕》에도 나온다.
훗날 루크레티아는 로마의 근면함과 정숙함의 상징으로 추앙되었으며,
시인과 화가들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널리 표현되었다.
성욕 한번 풀려다가 나라까지 망쳐먹는다는...
Sodoma
The Death of Lucretia, 1513
Damian Campeny Y Estany (1771-1855)
The Dying Lucretia
Marble, 1834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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