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렘브란트-인간의 깊은 절망과 고독, '예레미야'

강병현 2008. 9. 22. 13:11

인간의 깊은 절망과 고독, '예레미야' 


 

REMBRANDT,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레미야]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가 낳은 위대한 천재 '빛과 혼의 화가'로 불릴 만큼

빛이 지닌 심리적 효과를 탁월하게 묘사한 예술가이다.

특히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영혼까지 떨게 하는 깊은 행복감과 좌절감,

그리고 그 저변을 관류하는 특유의 고독까지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레미야]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의 깊은 절망과 고독, 인내를 표현한 그림이다.

어두운 화면 한가운데 머리를 괴고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예언자 예레미야이다.

이 늙은 예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해야 했다.

애절하게 기도했으나 끝내 구원으로부터 멀어진 도시.

그 도시가 지금 그림 왼편에서 불에 타고 있다.

이 불타는 도시를 향해 바빌로니아 왕 느브가네살이 당당히 진군하고 있다.

 한 민족의 멸망과 이를 슬퍼하는 선지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포착된 그림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만큼

이 그림은 좀 더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화면으로 구성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비규환의 울부짖음 속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이 생생히 부각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오히려 정적인 화면을 구사했다.

사람이 죽어 가는지,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지 얼른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매우 고즈넉한 그림이다.

렘브란트가 이 주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극단적인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간의 처연한 심사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멸망해가는 도시가 아니라 예레미야에게 빛을 비추고 있다.

도시의 고통은 암흑 속에 가려져 작고 아련한 메아리로만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명암 처리는 관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슬픔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렘브란트의 빛은 노인뿐 아니라 그의 실존적 고통까지 선명히 비춘다.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자신이 어떤 심경인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마음과 투명한 영혼까지 보게 되고

마침내 같이 흐느끼며 그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이처럼 렘브란트의 빛 처리는 서양회화를 이전 회화들보다 한 차원 높은,

더욱 고양된 정신적 호소력을 지닌 예술이 되게 했다.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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