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그림속의 관능의 미학

강병현 2008. 9. 22. 16:07

 

 

Kim Richardson

Hetaira

Oil on shell shaped wood 

 

 

헤타이라 Hetaira



헤타이라(hetaira)는 고대 그리스의 매춘부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의 매춘부는 그저 '몸만 파는' 여자가 아니라

철학, 정치, 예술 등을 토론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서

당대의 저명한 정객, 철학자, 장군 등과 교류하였다.


헤타이라는 화장술과 방중술은 기본이고 화법과 문학과 예술 등

지성을 갖추도록 교육받았다.

마치 조선시대에 해어화(解語花)라 불리기도 했던 고급 기생과도 흡사하다.

  그녀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고객을 취사선택했다.

콧대 높은 헤타이라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고객을 받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첩 타이스와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첩 아스파시아도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헤타이라들이 였다. 


 

BALDUNG GRIEN, Hans 한스 발둥

Aristotle and Phyllis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1513. Woodcut, 330 x 236 mm

Germanisches Nationalmuseum, Nuremberg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헤타이라를 사랑하여

평생을 같이 한 여인이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필리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헤타이라인 헤르필리스와 관계하여 니코마코스라는 자식을 얻었고

죽을 때까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철학자는 "여자는 열등한 존재"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위 그림은 그러면서도 욕망을 풀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는 위선과 이중성을

미모를로서 남자의 본성을 무력하게 드러내 보이게 하는 조롱섞인 그림이다. 

남성의 지성과 육체, 이성과 열정 그리고 욕망의 억압과 쾌락의

이율 배반적인 현주소를  바로 필리스가 고발하고 있다.

남녀는 조화로운 관계이지 누가 누굴 지배하고 우월할 수 없는 상생의 관계다.

 

 

장 레옹 제롬

Phryné before the Areopagus

 1861, 80x128cm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 아테네에 프리네라는 비너스의 용모를 빰치는 고급창부가 있었다.


당대의 지식인과 관리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프리네는

포세이돈 축체가 열리는 '엘레우시스'에서 새로운 '비너스'를 자처하며

아테네 시민들 앞에 알몸로 나타나기 까지 하였다.

그러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그녀가 어느날,

비너스 신의 시샘인지 노여움인지,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재판정의 분위기가 프리네에게 절망적 상황으로 몰려가자,.

당시 애인인 변호인 히페리데스가 재판관들 앞에서

프리네의 옷을 찢어 상아같은 그녀의 나신을 드러나게 한다.

눈부신 누드의 절대미 앞에서 심판관들은 무릎을 꿇게 되고

중죄인을 무죄 석방한다는 이야기...


 

Gustave Boulanger (1824-1888)

 Phryne. 1850

  


비너스의 현신 같은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죄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불경을 저지르는 듯한 느낌을 갖는 심판관들...

뛰어난 미모는 죽을죄도 용서받고 법의 테두리마저도 비껴선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미모가 출중한 여인은 고결하고 선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시인 키츠는 "아름다운 것은 진실한 것이고 진실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미와 선이 하나임을 강조한다.


프리네는 창부이면서도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당시의 남성들에게 여신처럼 숭배 된다. 


"왜 외형적인 미를 갈망하는가"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님이 아니라면 그런 바보같은 질문을 할 수 없다" 라는 한마디로 정의해 버린다. 


요즘 왜 성형이 유행인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Gustave Moreau (1826~98)

Messalina, 1874,


 

모로의 작품에서 젊은 남자는 사랑에 빠져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고 손은 벌거벗은 메살리나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메살리나는 생각에 잠긴 듯 보이지만 그녀의 손은 남자의 어깨를 만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머리에 쓴 왕관과 팔찌가 황후라는 것을 상징한다.

두 사람 뒤에는 황후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이 벌거벗은 채 횃불을 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메살리나 발레리아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세 번째 아내다.

 황제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젊었던 그녀는 로마 명문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녀에게 무관심했다.

성욕이 무척 강했던 그녀는 무관심한 왕에 대해

불만이 많아 다른 남자에게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다른 남자들과의 섹스는 성적 만족 이상의 것을 주었고

그녀는 지나치게 섹스를 탐닉하게 된다.

메살리나는 결국 신분을 속이고 매음굴에서 매춘을 하기에 이른다.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에서 그녀는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변태적인 쾌락을 즐기게 된다.

낮에는 황후로서, 밤에는 매춘부로서의 삶을 즐긴 그녀의 생은

당시 화가들에게 에로틱한 상상을 만족시키는 소재였다.

 

 

프랑수아 부셰 Francois Boucher

Brown Odalisk 1745

Musée du Louvre, Paris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시대는 로코코시대이며 음탕과 방탕의 시대이기도 하다.

국정에는 별 관심도 없던 이 바람둥이 왕이 한 여인의 늪에 빠져

근 20년 동안이나 헤어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이 신비한 마력을 지닌 여인의 이름은 마담 퐁파두르!

왕의 애첩으로 출발한 그녀에게 빠진 왕은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라는 작위를 하사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부인 곁을 찾았다.

퐁파두르는 미모뿐만 아니라, 남자의 심리를 꾀뚫고 있었으며

특히 그녀는 예술이라는 고상한 취미로 왕을 유혹했다.

덕분에 왕은 우아한 예술 애호가로 변신해 ‘루이 15세 양식’을 화려하게 꽃피우게 된다.

"얼굴과 몸매만 이쁜 미인"과의 놀이에 질린 왕은

미모와 지성, 예술을 두루 갖춘 퐁파두르에게 온통 넋을 빼앗겼다.

 나이에 들고 병이 나자 퐁파두르는 미인을 알선하는 뚜쟁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

왕의 바람기를 원격 조정했다.

부셰의 이 그림에 나오는 오모르피도 퐁파두르가 왕에게 상납한 여인중의 한명이다.

 

 

 

얀 베르메르 Jan Vermeer (1632-1675)

여자 뚜쟁이, 1656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여인의 바람과 불륜을 편지와 와인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포도주 잔은 남녀의 방탕함을 나타낼 때

또는 술집이나 유곽 장면에 많이 등장하는 소품이었다.


와인으로 인해 볼이 빨개진 가정주부 같은 여인이

손을 내밀어 기사가 내미는 돈을 받으려고 한다.

그 기사의 손은 여인의 가슴에 둔 채..

당시 매춘의 풍속화들은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했고 사람들을 교화하려고 했다.

매춘굴과 술로 인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Eduard Manet

Olympia[올랭피아] 1863


마네의 걸작 [올랭피아]는 고전주의적 주제 즉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고야의 [누드의 마야]에서 누드를 차용하고 있다.

나신의 창부가 손님을 기다리는 듯한 이 모습 때문에

마네가 1865년 살롱전에 올랭피아(Olympia)를 출품했을 때 

2년전 "풀밭위의 점심식사"에서의 비평가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고 만다.  


이 그림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and)으로

그녀는 전혀 부끄럼 없이 오히려 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도발적인 눈매 때문에 당시의 도시 부르조아와

지배계층들이 엄청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왜? 바로 이들이 주로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듯한 마네의 그림이

은밀한 사생활을 백일하에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나, 1877


마네의 <올랭피아>가 보들레르 시대의 매춘부라면, <나나>는  제 3공화국의 창녀였다.

이 작품이 보기 좋게 낙선하자 마네는 이렇게 말했다.


"사티로스에게 몸을 맡기는 님프는 괜찮고, 옷을 벗은 아름다운 여인은 안 된다는 거야?"


마네는 이 작품을 카푸친가에 있는 장식품, 그림 등을 파는 가게 진열장에 걸었는데,

이 그림을 보러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작품 역시도 창부의 치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욕망을 불태우는 듯한 신사의 이중성을 비꼬는 것이다. 


인상파가 활동하던 시절 파리는 가히 매춘부의 도시로 불릴 만큼 창녀가 득실거렸다. 1878년 파리시에는 3,991명의 창부가 공창에 등록되어 있었다.

15∼49살의 여성 1만 명당 약 45명이 창녀인 셈이다.

공창에 소속되지 않은 고급 창부와 뜨내기 창녀까지 합하면

매춘부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창부의 계급도 다양해 신분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피유(딸), 코코트(암탉), 그리제트(계집애),로레트(기생)


등이 당시 유행하던 창녀의 이름들이다.

이렇게 파리가 매춘부의 소굴이 된 것은 급격한 도시화로

생계가 막막해진 시골 여인들이 무작정 보따리를 싸들고 파리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Edgar Degas

Nude Woman Combing Her Hair,

1876-77 , Pastel (21,5 x 16,2 cm)

Private Collection.

 

 

위 그림의 상황은 마네의 작품과 비슷하다.

19세기말까지도 여인의 나체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성스러움과  불순함...

나체는 조각상에만 한정되어 있었으며, 때로는 예외의 경우도 보인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여인의 나체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기색을 보이곤 하여 이 시기의 화가들이 여인의 나체로 

곤욕을 치루거나 불명예스런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처럼 폭발적인 매춘부에 대한 관심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졸라의 "나나",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

뒤마의 "춘희"등


창녀가 주인공인 소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미술에서는 마네와 드가, 로트렉이 환락가의 창녀를 대담하게 표현했다.


특히 드가는 유곽과 창녀를 묘사한 50여점에 달하는

매춘부 연작을 그려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앙리 툴루즈 로트렉(1864~1901)

Two Half-Naked Women Seen from Behind in the Rue des Moulins Brothel 


 

위의 모로의 그림 메살리나가 섹스를 위해 스스로 매춘부가 되었다면

생활을 위해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한 그녀들은

자신들의 육체만이 생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한한 화가가 로트렉이다.


로트렉은 파리 뒷골목과 몽마르뜨의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매춘부들의 생활과 애환을 그의 일련의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

 

 

 

롭스 Felicien Rops (1833 - 1898)

 "Pornokrates" or "La Dame au cochon" (창부정치가)

  


 19세기 벨기에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화가인 롭스의 위의 그림은

그의 대표작으로 '창부정치가'로, 벌거벗은 창녀가 눈을 가린 채

돼지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당시의 세태를 비꼬고 있다. 

아래의 여자가 꼭두각시를 치켜들고있다.


이 여자는 남자를 파멸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악마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롭스는 세기말 당시 상류층의 이중적인 면을 지적하는

풍자화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등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샤리바리’지 같은 잡지에 신랄한 캐리커쳐를 게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