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대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정숙한 여신이었던 아프로디테와
야성과 충동의 상징인 판(Pan)이 만나면서 보여주는 코믹한 찰나는
자유롭고 감성적인 헬레니즘 시기에서부터 보여지기 시작했다.
〈아프로디테와 판〉
기원전 130 ∼100년 1420cm
아테네 국립 박물관
델로스 섬 하구 지역에서 우스꽝스런 신상 조각이 발굴되었다.
작달만한 판이 구애를 하는데, 여신이 슬리퍼로 뺨따귀를 갈기는 장면이다.
여신은 아프로디테. 머릿수건을 동여매서 여느 아낙네처럼 보인다.
옷을 홀랑 벗고 신발은 한 짝만 신었다. 아마 제의를 위해 목욕을 준비하는 참에
제 분수를 망각한 판이 달려들었던 모양이다. 대개 그렇듯이 왼쪽 신발을 먼저 벗었나 본데,
오른쪽 신발까지 벗기도 전에 훔쳐보던 판이 나타났다.
낯선 시선이 숨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아예 옷을 벗지도 않았을 것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아프로디테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분노가 치밀었다. .
노여움에 이어 남의 알몸이나 훔쳐보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줄 심산이다.
슬리퍼를 집어들어 뺨따귀를 후릴 작정이다.
그런데 이 순간 위험이 닥친다. 허리를 숙여서 슬리퍼를 줍는 데, 판이 여신의 미끈한 엉덩이
사이에 제 홍두깨를 들이댄 것이다. 순간의 기회를 포착하는 데 거의 동물적인 반사신경이 아닐 수 없다.
아니, 판은 애당초 동물적인 생식력을 상징한다.
느닷없는 이물감에 여신은 두 허벅지를 바짝 붙이고 용수철 튕기듯 허리를 편다.
그 참에 홍두깨는 과녁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뒤이어 판의 눈에서 불똥이 튀긴다.
염소 뿔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지만, 판은 포기하지 않는다.
때마침 슬리퍼를 휘두르느라 아프로디테가 앞으로 돌아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는 정면 공격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여신의 부끄러운 곳을 가린 왼팔을 걷어내면
일단 반은 성공이다. 이때 뒤늦게 나타난 복병이 에로스. 앙증맞은 손으로 염소 뿔을 붙들고
밀어내면서 일을 훼방한다. 그 틈에 아프로디테는 두 번째 일격을 준비한다.
머릿수건도 고급창녀 헤테레들이 쓰던 것과 모양을 쓰고 있는 이 아프로디테는
신발한짝을 들고(우리나라 시골 아줌마 모습이 생각나다^^) 교훈을 내리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입술을 빌려서 말하자면 대강 이렇다.
“구애와 사랑에도 순서가 있으니 서두르지 말라.”
“은근히 싸움에서 패하고 싶은 게 여자다.”
“갑자기 기습당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다고 섣불리 선을 넘다가는 호된 벌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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