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887년 여름, 파리.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그로트 춘데르트라는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흐의 작품 활동은 1880년부터 1890년까지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고흐는 1886년 3월 고향인 네덜란드를 떠나 파리로 간다.
Montmartre. 1886. 파리
Holiday at Montmartre, 1887
Van Gogh Museum, Amsterdam
파리시대 (Paris. 1886.2~1888.2)
파리에 2년의 반 고흐는 예술가으로서의
그의 직업의 안에서 가장 중추의 것이었다.
파리에서 빈센트는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일본 판화의 강렬한 색채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이전보다 훨씬 밝고 강렬한 색조를 띠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Van Gogh의 그림물감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Daken in Parijs, 1886
Olieverf op karton op multiplex, 30 X 41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La Guinguette,
1886. 65 cm x 50 cm
파리에 도착하자 고흐는
"프랑스의 공기는 나의 생각을 맑게 해주어
작업을 더없이 훌륭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라고 편지에서 적고 있다.
베르나르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의 고향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고,
더 많은 색채를 보게 되었으며,
함께 전시회를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Windmill on Montmartre
Montmartre Path with Sunflowers. 1887
위의 풍차그림과 이 그림은 구하기 힘들었다.
고흐가 애착을 가졌던 해바라기의 직접적인 정물화는 아니지만
이 그림에서 나온 해바라기가 있는 풍경화가
고흐의 해바라기의 시작점인 까닭에
이 그림을 구하려고 무척 많은 곳을 기웃거렸는데..
도판의 컬러는 다소 떨어지지만 기분 좋테^^
몽마르트의 야채밭 1887년 2~3월, 파리.
몽마르트의 야채밭 1887년 6~7월, 파리.
몽마르트의 야채밭 1887년 여름, 파리.
몽마르트에서 본 파리 1886년 여름, 파리.
고흐가 파리에 와서 클리치가(街)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그리기 시작한 풍경화 속에는 마르트의 길, 언덕, 풍차 등
밝은 광선을 몸 흠뻑 받은,
몽마르트의 시리즈가 등장한다.
이 언덕이 지금은 한 치의 빈 땅도 없는 시가지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밭 사이로 오두막집
농가들이 평화스럽게 자리한 농촌의 정경을 맛보게 하는 교외의 모습이었다.
이 작품들은 몽마르트 풍경의 대표적인 것으로
넓은 대지를 조망하는 듯,
공간을 크게 설정하는 등 큰 구도의 풍경화의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필치는 대지의 생동감을 더해 준다.
몬터말터의 비탈진 길 1886년 봄, 파리.
파리의 지붕 1886년 여름, 파리.
Le Moulin de la Galette, 1887
Poort in de verdedigingswerken, 1887
The ramparts with Horse Tram Sep. 1887
Die Brücke von Asnières, 1887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색채와 인상주의 회화의 분위기,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 그리고 이를 넘어선 실존적 의미의 붓질도 볼 수 있다.
Le restaurant de la Sirene Asnieres
1887. 66 cm x 55 cm
Boulevard de Clichy, 1887
<클리치의 거리>는 고흐의 파리 생활의 거점이었고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를 밀접하게 하면서,
이 거리를 신인상파 동료들의 거점으로 하고 싶어 했다.
그의 동생 테오와 함께 살던 아파트도 이 거리의 브랑슈 광장 바로 곁에 있었고,
로트렉의 본거지 물랑루즈도 이 거리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은 파리에서 고흐가 파리의 공기에 동화되어
신인상파의 일원이 된 한 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Kreupelhout, 1887
Olieverf op doek, 46.5 X 55.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Verliefde paartjes in het park Voyer d'Argenson te Asnières, 1887
Olieverf op doek, 75 X 112.5cm
Van Gogh Museum, Amsterdam
Bloempot met bieslook, 1887
Olieverf op doek, 31.5 X 2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사람도 곡식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싹을 틔울 힘이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
자연스런 삶이란 싹을 틔우는 것이거든.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
예술가가 되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지.
소망하는 것을 터뜨리기 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도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어머님께 깊은 사랑을 전해다오.
1887년 여름 - 가을
자화상 1887년 봄, 파리
Oevers van de Seine, 1887
Olieverf op doek, 32 X 46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Bridges at Asnieres, 1887
Oil on canvas, 52.5 x 65 cm
Factories, Room VI, 1887
oil on canvas
Sunflowers, 1887
Oil on canvas
네 송이의 해바라기 1887년 8~9월, 파리
이젤 앞의 자화상 1888년 초기, 파리
나무그늘의 풀.1887년 여름, 파리.
종달새가 있는 보리밭
1887년 여름, 파리. 오일 캔버스
파리의 변두리
그림의 제목처럼 그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단절되고
처절한 소외감으로 주변인이 되어간다..
파리에 온지 1년 6개월이 지나자 지친 심신으로
이 도시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된다.
다수의 화가와 교류를 하였지만 파리는 그의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았고,
대화를 나눌 상대도 별로 없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화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남 프랑스의 어딘 가로 떠나고 싶다.”
그는 더 많은 빛과 색을 찾아 남프랑스의 아를로 떠났다.
파리에서 고흐는 자화상, 정물화,
몽마르트의 풍경 등 200 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회색 중절모를 쓴 자화상 1887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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