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列子)[完]

列子 力命編 [ 2 ] 빈천함이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강병현 2016. 9. 17. 14:30

列子 力命編 [ 2 ] 빈천함이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北宮子謂西門子曰(북궁자위서문자왈)

복궁자가 그의 친구 서문자에게 일러 물었다.

朕與子竝世也(짐여자병세야)

나도 자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

而人子達(이인자달)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자네만을 잘되게 하고.

竝族也(병족야) 而人子敬(이인자경)

나도 자네와 같은 겨레인데 사람들은 자네만 존경하고.

竝貌也(병모야) 而人子愛(이인자애)

나도 자네와 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자네만 사랑하고.

竝言也(병언야) 而人子庸(이인자용)

나도 자네와 같은 말을 할 줄 아는데 사람들은 자네 말만 믿고 쓴다.

竝行也(병항야) 而人子誠(이인자성)

나도 자네와 같은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은 자네만 성실한 사람이라 하고.

竝仕也(병사야) 而人子貴(이인자귀)

나도 자네와 같은 벼슬을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네만 귀하에 여긴다.

竝農也(병농야) 而人子富(이인자부)

나도 자네와 같이 농사를 지었는데 사람들은 자네만 부자가 되게 하였고,

竝商也(병상야) 而人子利(이인자리)

나도 자네와 같이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네만 이익을 취하게 하였다.

朕衣則裋褐(짐의즉수갈) 食則粢糲(식즉자려)

나의 옷은 너절한 옷이요, 먹는 음식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이며,

居則蓬室(거즉봉실) 出則徒行(출즉도항)

거처하는 집은 쑥대로 이은 집이며, 집에서 나갈 때는 걸어서 다닌다.

子衣則文錦(자의즉문금)

그런데 그대가 입은 옷은 무늬있는 비단옷이요,

食則梁肉(식즉량육)

먹는 음식은 좋은 쌀밥과 고기이며,

居則連欐(거즉련려) 出則結駟(출즉결사)

거처하는 집은 저택이며, 어디를 나가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在家熙然有棄朕之心(재가희연유기짐지심)

집에 있으면 아주 단란한 생활을 하면서 나를 업신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在朝諤然有敖朕之色(재조악연유오짐지색)

조정에서는 자기 말만 정직한 말이라 하며 나에게 교만한 빛을 보이고,

請謁不相及(청알부상급)

서로 같이 만나볼 수도 없고,

遨遊不同行(오유부동항) 固有年矣(고유년의)

놀러 가도 나와 같이 다니려 하지 않은 지가 어느덧 몇 해가 되었다.

子自以德過朕邪(자자이덕과짐사)

자네는 스스로 생각할 때 자네의 덕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西門子曰(서문자왈)

서문자가 대답했다.

予無以知其實(여무이지기실) 汝造事而窮(여조사이궁)

나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자네는 일을 하고도 궁하고,

予造事而達(여조사이달)

나는 일을 하면 잘 되어나가니,

此厚薄之驗歟(차후박지험여)

이는 사람마다 덕이 후하고 박한 탓이 아닐까?

而皆謂與予竝(이개위여여병)

그런데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汝之顔厚矣(여지안후의)

그대의 뻔뻔스러운 태도이다.”

北宮子無以應(북궁자무이응) 自失而歸(자실이귀)

복궁자는 무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가다가,

中塗遇東郭先生(중도우동곽선생) 先生曰(선생왈)

도중에 우연히 동곽선생을 만났다. 동곽선생이 복궁자에게 물었다.

汝奚往而反(여해왕이반)

자네는 어디를 갔다 오기에

偊偊而步(우우이보)

그렇게 맥이 하나도 없이 혼자 걸어오면서

有深愧之色邪(유심괴지색사)

얼굴에는 부끄러워하는 빛이 가득한가.”

北宮子言其狀(북궁자언기상) 東郭先生曰(동곽선생왈)

복궁자는 서문자를 만나 이야기했던 것을 다 말했다. 동곽선생이 말했다.

吾將舍汝之愧(오장사여지괴)

내가 자네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겠네.

與汝更之西門氏而問之(여여갱지서문씨이문지)

내가 자네와 같이 서문자를 찾아가서 물어볼 말이 있네.”

()

동곽선생은 복궁자와 같이 서문자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汝奚辱北宮子之深乎(여해욕북궁자지심호)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 복궁자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는가?

固且言之(고차언지)

내가 듣는 데서 다시 한 번 말해보게.”

西門子曰(서문자왈)

이에 서문자가 말했다.

北宮子言世族年貌言行與予竝(북궁자언세족년모언항여여병)

북궁자가 말하기를 세대와 족벌과 나이와 말과 행동은 나와 같건만,

而賤貴貧富與予異(이천귀빈부여여리)

존귀하고 비천하고 부유하고 가난한 것이 나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予語之曰(여어지왈)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말하기를,

予無以知其實(여무이지기실) 汝造事而窮(여조사이궁)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대는 일을 하고도 궁하고,

予造事而達(여조사이달)

나는 일을 하면 성공한다.

此將厚薄之驗歟(차장후박지험여)

그것은 덕에 후하고 박함이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而皆謂與予竝(이개위여여병)

그런데도 모두 나와 같다고 하는 것은,

汝之顔厚矣(여지안후의)

그대의 뻔뻔스러움이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東郭先生曰(동곽선생왈)

이에 대하여 동곽선생이 말했다.

汝之言厚薄(여지언후박)

자네가 후()하니 박()하니 하고 말하는 것은,

不過言才德之差(부과언재덕지차)

사람의 재주와 덕을 가지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吾之言厚薄異於是矣(오지언후박리어시의)

내가 말하려고 하는 후와 박은 그런 것과는 많이 다르다.

夫北宮子厚於德(부배궁자후어덕) 薄於命(박어명)

대체로 복궁자는 덕에는 후하고 명에는 박한 사람이고,

汝厚於命(여후어명) 薄於德(박어덕)

자네는 명에는 후하지만 덕에는 박한 사람이다.

汝之達(여지달) 非智得也(비지득야)

자네가 성공하는 것은 결코 자네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고,

北宮子之窮(북궁자지궁) 非愚失也(비우실야)

또 북궁자가 지금 궁한 것은, 결코 어리석움에 의한 과실이 아니다.

皆天也(개천야) 非人也(비인야)

이것은 모두 자연의 섭리이지 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而汝以命存自矜(이여이명존자긍)

그런데도 자네는 명이 후한 것을 자랑하고

北公子以德厚自愧(북공자이덕후자괴)

복궁자는 덕이 후한 것을 도리어 부끄러워하니,

皆不識夫固然之理矣(개부식부고연지리의)

자네와 복궁자는 모두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西門子曰(서문자왈)

서문자가 말하였다.

先生止矣(선생지의) 予不敢復言(여부감복언)

선생님 그만 하십시오, 저는 다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北宮子旣歸(북궁자기귀) 衣其裋褐(의기수갈)

이에 복궁자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너절한 옷을 입어도,

有狐貉之溫(유호학지온)

여우나 오소리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보다 더 따듯하였고,

進其茙菽(진기융숙) 有稻梁之味(유도량지미)

피와 콩밥을 먹어도 고량진미 보다 더 맛이 있었고,

庇其蓬室(비기봉실) 若廣廈之蔭(야광하지음)

오막살이에 살아도 고대광실에 사는 것보다 더 넓게 살았고,

乘其篳輅(승기필로) 若文軒之飾(야문헌지식)

섶나무 실은 수레를 타고도 훌륭한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더 편했다.

終身逌然(종신유연)

몸을 마칠 때까지 모든 것을 깨달은 듯이,

不知榮辱之在彼也(부지영욕지재피야)

영화와 치욕이 저편에 있는지,

在我也(재아야)

자신에게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東郭先生聞之曰(동곽선생문지왈)

동곽선생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北宮子之寐久矣(북궁자지매구의)

북궁자가 편안해 진 것은 오래이다.

一言而能寤(일언이능오) 易怛也哉(역달야재)

한 마디 말에 깨달을 수 있었다. 민감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