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카라밧지오 - 영화처럼 살다간 영혼

강병현 2008. 9. 11. 10:00

 

카라밧지오  CARAVAGGIO

 

17세기 초 유럽의 회화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 동안 주로 종교화와 신화화, 초상화들이 주류였던 데 반해,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가 새로은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그림의 종류가 다양 해 졌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카라밧지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가 있었다.

 

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

 

카라밧지오의 그림의 특징이 몇가지 있다.

이러한 특징은 또한 새로운 미술사조의 근간을 마련하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1) 극심한 명암대비를 이루면서 형태를 강조

  17세기 회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빛과 그림자가 엮어 내는 극적인 효과를

대상 속에서 찾고자 한 카라밧지오의

  강렬한 명암법은 르네상스 양식을 뛰어 넘어 바로크양식의 주요  특징이 된다.

 

The Calling Of St. Matthew, 1599-1600

 

 

2) 성인도 서민으로 그리다.

  카라밧지오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풍에서 벗어나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한 화가다.   

새로운 미학으로의 전환점으로

  리얼리즘 뿐 아니라 당시 회화의 주종을 이루었던 종교와   신화화의 주인공들.

즉 성인이나 신들의 근엄한 모습을

  배제하고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옷차림 등으로 그려 보는 이들에게 충격과 거부감을 주었다.

 

 

3) 자연주의 화가

 

  카라밧지오의 그림은 한눈에 보아도 너무나 인상적이다.

정교한 사실묘사, 자신의   자화상을 목이 잘린 골리앗의 모습으로 그린 상상력은 충격적이다.

이처럼  극단적   자연주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전주의의 고상함을 따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눈으로 본 것에 의지하여 추하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하였다.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98

 

이 같은 17세기 회화의 커다른 변혁이

카라밧지오라는 불과 39년밖에 살지 못한 한 사람에 의해 고안되거나

시도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그와 동시대의 화가인 렘브란트, 루벤스, 그리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카라밧지오에게 많은 영향과 빚은 지고 있음을 보면

그의 회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카라밧지오는 그가 그린 그림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았다.

카라밧지오는 평생을 기성체제에 도전하며 반항하다

불과 39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풍운의 화가다.

도박과 주벽, 결투와 투옥, 살인과 도피로 이어진 긴박한 삶을 살았던 화가였다.

 

카라밧지오는 밀라노 근처의 롬바르디 지방에서 1571년에 태어났는데,

이 곳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보다 북유럽

사실주의의 영향이 강했던 곳이었다.

1576년 흑사병의 창궐로 어린 카라밧지오는 부친과 조부 등을 잃는 불행을 겪는다.

이 때부터 카라밧지오의 삶은 평탄지 못했다.

13세가 되는 1584년부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1590년에 모친마저 사망하고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써버린 화가는

92년경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간다.

 

<병든 바쿠스> 1591

 

이 그림은 당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자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병들고 처량하여 오히려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남자로 바쿠스를 묘사하고 있다.

  

<행운> 1594

로마, 카피톨리노 미술관

 

빈털터리의 빈곤한 화가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토스카나 공국의 대사였던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을 만남으로써

그의 재능을 인정받고 초기의 주옥같은 작품 <행운><사기꾼들> <류트 켜는 청년>등을 그렸다.

갓 20을 넘긴 천재 화가가 고향을 떠나 로마에 정착하면서

그린 그림들이 17세기 풍속화의 시발적이 되는 시점이었다.

 

<사기꾼들> 1596

 

서민들의 생활, 카드놀이와 노래부르기 등과 같은 일상모습은

그 동안 역사화에 밀려 취급조차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화가는 이 같은 주제를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종교화와 신화화에 버금가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Basket of Fruit, 1596

 

이탈리아 최초의 정물화이다.

카라밧지오는 자연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썩고 벌레먹은 과일, 시든 잎사귀,

그가 그린 정물화는 장식적 효과보다는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Bacchus 1596

 

카라밧지오가 활동하던 당시 이탈리아는

매너리즘이 지배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주의적 사실성이 충만한 그의 이 작품은 이색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풍속화도 초상화도 아닌 이 그림은 주제가 말하듯이

그리스 신화의 소재를 세속화한 것이다.

건장한(?) 신체와 낙천적인 표정의 젊은 바커스는 술잔을 들고 탁자에 앉아서

여러 가지 과일과 술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인물은 정확한 묘사에 조소적인 표출이 되어 있고

탁상의 과실 또한 그 사실적 성격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있다.

 

The Entombment  1602-03

 

루브르미술관의 《성모의 죽음》,

로마에 있는  프란체시 성당의 《성마태오의 순교》,

바티칸궁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 《로사리오의 성모》 《나자로의 부활》 등

성모와 성자를 모델로 로마에 사는 빈민의 모습을

등장시킨 그의 그림들을 보면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고,

형상을 힘차게 조소적(彫塑的)으로 묘사함으로써,

근대사실(近代寫實)의 길을 개척하였다.

 

Madonna del Rosario 1607

 

1600년경 성 루이지 프란테시 성당 작품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카라밧지오는 로마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당시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품목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무렵 화가로서의 성공과 더불어 카라밧지오는 괴팍한 성격은 극에 달했다.

1605년 동안의 고소, 고발사건과 체포와 투옥을 반복되어

거리의 부랑아인지 화가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이다.

 

The Crowning with Thorns

 

그러나 1606년 5월 28일, 화가의 생애에 돌이킬 수 없는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테니스 놀이중 내깃돈 때문에 상대인 명망있는 가문의 톰마소니를 살해함으로써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사건 3일후 카라밧지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고단한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1607년 나풀리에 머물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고,

 다시 시칠리아로 와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다.

1609년 다시 나폴리로 왔으나 자객의 칼에 맞은 후 악화되어 1610년 헬라클리움 해변에서 죽는다. 

죽기 직전 교황의 사면을 받고 로마로 돌아가기 위해 짐까지 배에 실었으나

누군가의 실수(또는 고의로)로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영영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후미진 해변에서 절망적으로 죽어 갔다. 

 

 

카라밧지오는 개인적으로 좌충우돌하는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화가로서의 그는 참으로 엄청난 열정과 천재성을 지닌 화가였다.

풍속화나 정물화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천대받는 회화 장르를 격상시킨 일이나,

결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진실을 표현한 용기는

오늘날의 사조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미술가들에게 생각과 각성할 여지를 남긴다. 

  

Madonna Di Loreto, 1603-05

 

화가는 일생동안 동성애 성향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사소한 놀이 끝에 동료를 살해한 경력과 잦은 투옥 등 곡절

많은 생애를 살았던 카라바지오는 평생 제자를 두거나 일가를 이루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도하였던 혁신은 이탈리아에서 많은 추종자를 낳았으며,

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르 등 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

 

St. Francis In Ecstasy, 1595

 

현재 국내의 서적이나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이 화가의 이름이

  1) 카라밧지오- 고종희/ 김현우 등, 세계명화의 비밀, 모니카 봄 두첸지음)

  2) 카라바조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이명옥 등)

  3) 카라바지오 (세계의 명화, 인터넷 백과사전 등),  

  4) 카라바죠 (인터넷 블로그 등) 등이 대표적이 번역되어 사용되는 이름이다.

  5) 카라밧지오의 원래 본명은 'Michelangelo Merisi' 이다.

 

이 화가의 이름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이름이 4가지이다.

본명까지하면 5개나 된다~

이름 하나 제대로 통일하지 못하는 미술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불만과 연민이 크다..

나름대로 이태리, 프랑스에서 유학했다고 폼만 잡지 말고, 

체계부터 먼저 잡아야 하는 게 아닌지..

정말 이런 식의 허접한 학문은 처음 본다.

 

The Entombment, 1602-03

 

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