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Death of Sardanapalus)
들라크루와(DELACROIX, Eugène)의 작품 중 <사르다나 팔루스의 죽음>을 보았을때...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히 팔을 괴고 있는 남자 앞에 그려진 장면은 엄청난 비극과 잔인성을 묘사하고 있는데도
역동적인 분위기는 없고,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냉정하고 가라앉은 정적인 영상이 떠오르다니..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들라크루아가 영국을 여행한 후
연극에 대한 이해가 한층 많아진 후 그린 것으로
바이런의 희곡 <사르다나팔루스>(1821)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1828년 살롱전의 소개 책자에 이 작품에 관해 적었다.
“사르다나팔루스는 거대한 화장대 위에 놓인 화려한 침대에 누워 화관들과 궁정의 근위병들에게 그
의 처첩들과 시종들 그리고 그가 총애하던 말들과 개들까지 모조리 목을 자르라고 명한다.
그의 쾌락에 봉사했던 그 어떤 것도 그가 죽은 후 살아남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7세기에 아시리아의 왕이 적군에 의해 포위되어서
2년간 궁전에 갇혀 살았는데..
마침내 적들이
자신의 호화로운 궁전에 난입하기 전에그가 사랑했던 후궁들과 말들을 죽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모조리 불지른 후 자신도
방바닥에는 온갖 보물들이 흩어져 있으며
흑인 하인은 곧 죽일 왕의 백마를 방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있고...왕의 침대를 끌어안고 살해된 여인의 매끈한 피부와
왕의 하인들에 의해 칼에 찔리는 순간에 뒤틀린 여체의 곡선미는
지나친 슬픔과 비극은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는..
그런 상태가 지금 왕의 심정이 아닐까??
1834년에 살롱에 출품되어 찬성과 반대 등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모로코 여행의 체험에서 태어났다.
1830년, 7월혁명의 결과로 성립된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정부는 모로코의 술탄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샤를 드 모르네' 백작을 대사로 하는 공식 정부 사절단을 모로코에 파견하기로 했다.
들라크루아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절단에 수행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들라크루와의 생애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이 모로코 여행은 약 반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에 사흘 정도 알제리에 들렀을 때 들라크루와는 우연히 ' 알제리의 여인들'의 방을 볼 기회가 있었는ep, 귀국 후 그의 붓끝에서 <알제리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아랍의 풍속이나 여자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 연이어 태어났는데, 그 작품들에 풍부한 재료를 제공한 것이 반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려넣은 이 모로코 여행의 스케치북이었다.
시인이지 비평가인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와의 작품은 멀리서 보아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잘 알 수 없을 때에도 그 독특하게 빛나는 색채때문에 들라크루와의 작품이라는 것만은 곧 알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확실히 그의 작품에는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광채가 있다.
오달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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