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쉴레와 카라밧지오에서 처럼 젊은 천재화가의 옆에는
이상에 대한 처철한 몸부림이
보티첼리의 영향을 받아
"목이 길어 슬픈" 여인상을 주로 그렸던 모딜리아니는
한때
여류 시인과 용광로 같은뜨거운 사랑을 했고,
그녀를 모델로 한 인물화에 깊이 빠졌다.
마침내 그는 평생의 모델이 된 아내 쟌느를 만나면서
얼굴이 긴 여인이라는
불후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자주가던 로톤드(카페 이름)에
한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이 그림공부를 위해 몽파르나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19세의 쟌느는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고
밤색머리를 둥글게 아 올려 다녔기 때문에 '느와 드 코코' (야자열매라는 뜻) 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모딜리아니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태운다..
잔느 에뷔테른느는 엄격한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태인인 모딜리아니와 결혼한다.
그해 4월에 콜라로시 아카데미 재학 중인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생의 반려가 되며
앞으로 삼 년간
로톤드의 맞은 편 그랑 쇼미 엘거리에 셋방을 얻어 같이 살게 된다.안정된 시기가 찾은 모딜리아니의 독자적인 표현 양식은 급속도로 만개하게 된다.
이듬해 잔느는 딸을 낳는다.
모디는 딸의 이름을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잔느라고 지었다.
(이 딸 잔느가 후일 성장하여 미술사가가 되어모딜리아니 연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만든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의 저자이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디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 께요…"
과다한 음주와 약물로 인해 결국 1920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딜리아니가 숨을 거둔 그 날밤,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영혼까지 화폭에 다 쏟아버린 모델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 그녀는
화가의 사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쟌느 에퓨테른느(Jeanne Hebuterne)
(April 6, 1898 - January 26, 1920)
쟌느 에뷔테르느를 알게 됨은 모딜리아니에겐
그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도달한 참다운 사랑의 승리였다.
그녀는 그를 위해서만 태어난 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얻고서야 그 마음 속에서 오랫동안 찾고 있던 [사랑에만 사는 여성]을
겨우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생활의 반려인 동시에 더할 나위없는 모델이었고,
그의 예술의 판타지와 숨결 바로 그것이었다.
'그림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리 앙뜨와네트..비운의 왕비 (0) | 2008.09.19 |
---|---|
구스타프 모로 Moreau.. 상징주의 화가 (0) | 2008.09.19 |
헤르메스 (메르쿠리우스y) ..전령의 신 (0) | 2008.09.12 |
들라크루아 -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알제리의 여인 (0) | 2008.09.12 |
오디세우스 (율리시스) (0) | 2008.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