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부게로 William-Adolph Bouguereau : 새로운 조명

강병현 2008. 10. 16. 17:49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8 - 1905)

 

19세기와 20세를 거쳐 살아간 화가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William Bouguereau : 1825-1905 : France)의 그림은

가끔 슬퍼 보인다.

큐피트가 울고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시름에 빠져 있다.

무언가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

그리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고통이 덤덤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때로는 신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묘사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의 형상이 나타나거나 짚시 소녀가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곤 한다.

 

첫 키스 the First Kiss (1890)

L'Amour et Psyche, enfants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The Secret, 1876  oil on canvas,

New York Historical Society

 

부게로는 수십 년 동안 '살롱전(미술 전람회)'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면서 화가로서 대성을 한다.

후기에는 파리의 여러 교회장식을 맡아 하였으며,

보르도의 큰 극장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tm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도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1876년에는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The Harvester 1868

 

Return from the Harvest,  

1878, oil on canvas,

Museum of Art & Gardens, Jacksonville.

 


부게로는 낭만주의의 끝자락에 서서 아카데미즘을 널리 알리려 한 인물이었으나

인상파의 시류를 이기지 못한 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화가다.

실제로 부게로에 대해서는 "저주받은 화가"라는 둥

다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지만,

부게로가 "저주받은화가"라고 불리는 것은,

그 의 작품들이 후대의 미술사학계에서

철저하다 싶을 만큼 소외당했기 때문이다.

 

L'aurore 1881

 

부게로 활동하던 당시 화단에 '이단아'처럼 등장해

그야말로 핵폭탄급의 충격을 던졌던 인상파의 출현이

작금에 와서 아무래도 미술사학적으로는 더 영향이 컸기 때문이지만

부게로는 당시의 프랑스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던 예술가였다. 

해부학적 완벽을 추구하는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낭만주의의 마지막 선봉,

 부게로를 기존의 화풍과는 다른 그림을 들고 나왔던 인상파 화가들이

소위 "기법적 기득권층"의 대표격으로 간주한 것은 당연했다.

 

 

Apres le bain 1894


부게로는 당시 파리 화단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였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파리 살롱에 전시되었으며

전시회의 그림들을 본 사람들로부터 원작의 축소판을 그려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프랑스 국립 미술원의 종신회원으로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명예 작위까지 받을 만큼

동시대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끝내 후배들과 "코드"를 맞출 수 없었던 부게로는

그대로 잊혀진 화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The Flagel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드가와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이런 부게로를 끔찍하게 싫어해서

통속적이고 보수적이고 과거중심적인 데도 진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프랑스 미술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끊임없이 부게로를 헐뜯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부게로 역시 인상파를 보는 시각은 그들과 다름이 없었다.

당시의 모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주의에 대해 그는,


"무슨 까닭으로 자연의 추함을 재현한단 말인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린다고? 안 된다!"


인상파들은 부게로를 끊임없이 헐뜯고 깎아내렸지만,

그 것으로 부게로의 재능이나 그의 작품의 위대성까지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그들로 하여금 부게로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부게로의 그림에서의 재능이 미숙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들 자신의 천재성이었다.

부게로 정도의 거장이었다면,

거기에 동조나 공감은 하지 않았더라도

인상주의의 위대함을 꿰뚫어볼 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The first mourning

(아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담과 이브)


이 그림은 창세기 4장에 나와 있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 일컬어지는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Dance

1856,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Fred Ross 라는 인물이1977년에 Clark Museum에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러갔다,

그 구석에서 처음으로 부게로의 작품 보았다.

콜럼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자신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림..

 

 

월리엄 부궤로 - The Remorse of Orestes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철저하게 묻혀 질 수 있는지,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해 말이죠.

아는 사람도, 자료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가 시작된다.

그리고 동시대를 연구하고, 내버려진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이 일이 '부궤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Jules Joseph Tissot, Alexander Cabanel, Jules Lefebvre,Ernst Louis Meissonnier,

Jean George Vibert , Leon Bonnat and Leon L'hermitte from France,

John William Waterhouse, Dante Gabriel Rossetti, Sir John Everett Millais,

Edward Coley Burne Jones Sir Lawrence Alma-Tadema,

Frederic Lord Leighton, and Frank Dicksee 등등....

인상파와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그리고 대량생산을 선호하는 딜러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희생된 사람들...

 

Fraternal Love,

1851, oil on canvas,

Museum of Fine Arts, Boston.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원근법과 해부학적인 관점을 중시여긴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회화에 있어서 누적된 지식과 기술,

훈련으로 인해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수 있었던..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근육, 핏줄, 뼈대.. 생생한 색깔..

그중의 최고라고 평가받는 부게로.


"회화에서 나는 이상주의자다.

나는 예술에서 아름다운 것만을 보며,

나에게 예술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Psyche by Bouguereau

 

All Saints' Day (Le jour des morts),

1859, oil on canvas,

Musee des Beaux-Arts, Bordeaux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의 몸을 평면화시키고, 입체화 시키고,

 갖은 기구를 동원하여 알 수 없게 표현한 현대의 그림에 못지않게,

인간 신체의 본래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그 표현의 독창성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 그림은 명화로서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감상은 그런 것이 아닐까??..

비평을 위한 감상보다는 감상을 위한 감상이

"그림을 보는 시각"에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