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에 대하여

강병현 2009. 2. 2. 14:50

"완벽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역사상 인간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작가 미켈란젤로.

동성연애자라는 말도 있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성당을 장식하는 그림과 조각에만 일생을 바쳤다. 화려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매너리즘, 바로크 양식의 미술까지 열었던 화가이자 건축가, 시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존경받는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여느 귀족처럼 자신의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화가들은 단순한 장인이자 천대받는 직업인이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아들의 열망을 꺽기 위해 매질까지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자신의 손으로 12살된 아들을 이끌고 친구였던 조각가에게 제자로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미켈란젤로는 그림교본 스케치 속에 자신의 스케치를 넣어놓는 장난을 한다. 하지만 스승은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 배울게 없다고 판단한 미켈란젤로는 1년 만에 스승의 곁을 떠나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15살이 될 즈음, 피렌체의 최고 실력자인 메디치 가문로렌초가 그를 발견하고 후원하기로 한다. 그 곳에서 소년 미켈란젤로는 철학자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그리스철학을 대화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했다. 그의 예술에서 엿보이는 철학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화가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조각들에 대해 당시의 교황과 귀족들까지 열광하였다. 당시 유명한 문필가 아레티노라는 사람은 그에게 스케치 한 장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편지를 썼는 데 결국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분했던 그는 나중에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조각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주문으로 인해 맡은 일이 너무 많아지자 절망과 혼란에 빠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극단적 완벽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미완성으로 남기는 작품들도 많았다. 후에 그는 이런 상황을 “수많은 칼이 나를 찌르는 것 같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1508년부터 4년 동안 시스타나 성당의 천장에 매달려 거의 혼자서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자존심 강한 미켈란젤로는 작가로서의 주관과 고집이 대단했다. 교황이 바쁘다며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교황이 날 찾으면 없다고 하라”며 로마를 떠나기도 했고, 추기경 비아지오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마디 하자 그를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그려놓았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1532년 즈음 아버지와 형이 죽고, 자신을 후원하던 메디치가도 권력의 종말을 맞이할 즈음 그는 죽음에의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젊은 귀족 카발리에리였는 데 미켈란젤로는 그에게 동성애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신에 대한 사랑과 동성애의 감정에서 고민하던 그의 복잡한 심경은 <최후의 심판>에 잘 나타난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은 스스로 느낀 죄많은 삶에 대한 늙은 예술가의 속죄행위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기쁨과 경이감을 느끼고, 혹자는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미켈란젤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극단적 종교주의자들은 그의 사생활과 도덕성, 예술성 등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결국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켈란젤로는 그의 말년에 예술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랑이 없는 율법주의자들의 말들이 한 예술가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 피에타 (1500) ]

 

피에타는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조각상으로 추기경이 주문한 것입니다. 계약서에는 “살아있는 어떤 화가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는데요, 이 후 종교조각사에서 이 조각상을 능가하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그는 이 계약을 훌륭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유일하게 그의 싸인이 성모의 가슴에 있는 데요, 그 이유는 이렇게 완벽한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강조한 것이라 하네요.

 

[ 다비드 (1504) ]

 

가장 완벽하게 남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다비드상은 구약성경에서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조각은 피렌체 정부가 도시를 상징하는 작품을 의뢰해서 만든 것인데요, 하나의 대리석 덩어리를 이용해서 조각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이전에도 두치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등이 이 대리석 덩어리로 조각을 하다가 실패했지만, 미켈란젤로가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성가족 (1504) ]

 

미켈란젤로가 처음으로 완성한 회화작품입니다. 결혼하는 어느 부부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 데요, 이 당시에는 원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흔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요셉, 예수 등 주요인물들이 조각과 같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좁은 담을 사이로 나체의 남성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들은 성가족과 뚜렷한 대비를 보입니다.

 

 

[ 시스타나 성당의 천정화 전경 (1512) ]

 

1508년부터 4년동안 미켈란젤로는 천평방미터나 되는 성당의 천장에 삼백여명의 인물들을 그려내었습니다. 위의 전경을 보시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요, 천지창조에서부터 원죄, 노아의 방주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의 아?장면을 완성했습니다. 가운데에 성서 이야기가 있고 중심 화면의 좌우에 12체의 선지자, 무녀등이 그려있습니다. 모든 인물들이 하나같이 완벽한 신체구도와 색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 : http://blog.daum.net/dain0477/5639552

 

 

[ 아담의 창조 (1512) ]

 

시스타나 성당의 천정화중에서 구름과 천사들에 받들려 있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장면입니다. 예전에 광고나 영화에서도 차용되었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죠. 하나님의 모습이 그리스의 근육질 영웅처럼 표현되어 있는 데요,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이브의 창조 (1512) ]

 

시스타나 성당 천정화에 아담의 창조 이후에 나타나는 장면으로 성서 이야기를 순서대로 그린 것입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듯한 이브의 모습을 중심으로 하고 네 명의 인간 군상이 그려져 있는 데요, 이는 인간의 네가지 기본 성격인 다혈질, 담즙질, 점액질, 우울질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신비로운 아담의 창조에 비해선 다소 평범해 보입니다.

 

 

[ 노아의 번제 (1512) ]

 

홍수에서 구제된 노아가 그의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올리는 장면입니다. 시스타나 천정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딱딱하고 경직되어 보입니다. 노아의 번제를 중심으로 둘레에 있는 네 명의 인간은 인간의 네가지 감각인 시각(오른쪽 아래), 촉각(오른쪽 위), 미각(왼쪽 아래), 청각(왼쪽 위)을 표현합니다.

 

 

[ 죽어가는 노예 (1515) ]

 

이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40년동안 매달린 율리우스 2세가 죽은 후 그의 묘비작업을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40여점의 조각을 계획하였으나 결국 다섯 작품만을 완성했구요, 그 중 하나가 위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인물은 죽어가는 것인지 깨어나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매우 모호한데요. 그리스 미술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미술을 사랑했던 율리우스 2세 이후 미술이 쇠퇴했다는 것을 상징하게 되었답니다.

 

 

[ 모세 (1515) ]

 

이 모세상은 앞의 <죽어가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입니다. 위의 작품은 조각가로서의 미켈란젤로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데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있고, 십계의 석판을 무릎 위에 놓고 있는 이 조각은 무시무시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미켈란젤로에게도 동일하게 보여지는 부분이었다고 하네요.

 

 

[ 최후의 심판 (1541) ]

 

1536년부터 약 6년동안 쉬지 않고 매달려 완성한 작품으로 미술에 대한,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입니다. 하나님을 근육질의 젊은 남자로, 그리고 그 주변에는 벌거벗은 인간들로 그린 것을 놓고, 미켈란젤로의 종교적 도덕심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가운데에 성인이 들고 있는 인간 가죽에는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는 데요, 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참고 : http://blog.daum.net/dain0477/5736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