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三 致知 61. 이천 선생이 춘추전 서문에서 말하였다.

강병현 2016. 9. 5. 13:43

卷三 致知 61. 이천 선생이 춘추전 서문에서 말하였다.

 

 

伊川先生春秋傳序曰(이천선생춘추전서왈)

이천 선생이 <춘추전(春秋傳)> 서문에 말하기를,

天之生民(천지생민) 必有出類之才(필유출류지재)

"하늘이 백성을 낳음에,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있게 하여,

起而君長之(기이군장지) 治之而爭奪息(치지이쟁탈식)

백성의 군주가 되게 하니, 나라를 다스려서 싸우고 빼앗는 일이 없게 하고,

導之而生養遂(도지이생양수) 敎之而倫理明(교지이륜리명)

잘 이끌어서 육성하여 만족을 이루게 하며, 가르쳐서 윤리를 밝게 하였다.

然後(연후) 人道立(인도립) 天道成(천도성)

그렇게 한 뒤에야, 인도(人道)가 서고, 천도(天道)가 이루어 지며,

地道平(지도평)

지도(地道)가 평탄해 지는 것이다.

二帝而上(이제이상) 聖賢世出(성현세출)

()와 순() 두 제왕 이상까지는, 성현(聖賢)들이 세상에 나타나서,

隨時有作(수시유작)

때에 따라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왔으며,

順乎風氣之宜(순호풍기지의) 不先天以開人(불선천이개인)

풍기(風氣)의 마땅함에 좇아서, 하늘에 앞서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서,

各因時而立政(각인시이립정)

각각 때를 따라서 정치를 세웠던 것이다.

曁乎三王迭興(기호삼왕질흥)

삼왕(三王)이 번갈아 일어나 나라를 세우고,

三重旣備(삼중기비)

세 가지 큰 법이 이미 갖추어 지자,

子丑寅之建正(자축인지건정)

((()의 달을 정월(正月)로 정하고,

忠質文之更尙(충질문지갱상) 人道備矣(인도비의)

((()을 숭상하게 되니, 인도(人道)가 갖추어 졌으며,

天運周矣(천운주의)

천운(天運)이 골고루 미치게 되었다.

聖王旣不復作(성왕기불부작) 有天下者(유천하자)

그러나 성왕(聖王)이 다시 나오지 않게 되자, 천하를 가진 자는,

雖欲倣古之跡(수욕방고지적)

비록 옛 성인의 업적을 본받고자 하였을지라도,

亦私意妄爲而已(역사의망위이이)

또한 그것은 사사로운 뜻이라 망령될 뿐이었다.

事之繆(사지무)

일이 잘못됨으로써,

秦至以建亥爲正(진지이건해위정)

()나라가 건해(建亥)를 정월로 삼고 이를 바르다 하기에 이르렀으며,

道之悖(도지패)

()가 잘못된 것은,

漢專以智力持世(한전이지력지세)

()나라가 오로지 지력(智力)만을 가지고 천하를 유지한 것이니,

豈復知先王之道也(기부지선왕지도야)

어찌 선왕(先王)의 도를 알 수가 있었겠는가.

夫子當周之末(부자당주지말) 以聖人不復作也(이성인불부작야)

공자는 주()나라 말에 이르러, 성인이 다시 나오지 않자,

順天應時之治不復有也(순천응시지치불부유야)

하늘에 따르고 때에 응하는 정치가 시행되지 못할 것을 생각하여,

於時(어시) 作春秋(작춘추) 爲百王不易之大法(위백왕불역지대법)

그 때에, <춘추(春秋)>를 지어, 백 왕이 바꿀 수 없는 큰 법을 삼게 하였다.

所謂考諸三王而不謬(소위고제삼왕이불류)

이른바 삼왕(三王)의 일에도 잘못되지 않고,

建諸天地而不悖(건제천지이불패)

천지(天地)의 도()에 세워도 어긋남이 없으며,

質諸鬼神而無疑(질제귀신이무의)

귀신(鬼神)에게 물어도 의문(疑問)이 없어서,

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백세이사성인이불혹자야)

백세(百世)를 지내며 성인을 기다린다고 해도 의혹지 않는 것이다.

先儒之傳曰(선유지전왈)

선유(先儒)의 전()에 말하기를,

游夏不能贊一辭(유하불능찬일사)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와 자하(子夏)

한 마디 말조차 덧붙일 수 없는 자였다고 하였으니,

辭不待贊也(사부대찬야)

문장은 칭찬을 기다리지 않고,

言不能與於斯耳(언불능여어사이)

이 말은 성인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斯道也(사도야) 惟顔子嘗聞之矣(유안자상문지의)

이 도(), 오직 안자(顔子)만이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行夏之時(행하지시) 乘殷之輅(승은지로)

'()나라의 역법을 시행하고, ()나라의 검소한 수레를 타고,

服周之冕(복주지면)

()나라의 예법에 맞는 관복을 입고,

樂則韶舞(악즉소무)

음악은 순()임금의 소무(韶舞)를 쓰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此其準的也(차기준적야)

이것이 그 기준이었다.

後世(후세) 以史視春秋(이사시춘추)

후세에 와서는, <춘추>를 사서(史書)로 보아서,

謂褒善貶惡而已(위포선폄악이이)

착한 것은 칭찬하고 악한 것은 비방하였을 뿐이라고 하니,

至於經世之大法(지어경세지대법) 則不知也(즉부지야)

세상을 다스리는 큰 법에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春秋大義數十(춘추대의수십) 其義雖大(기의수대)

<춘추>의 대의는 수십 개가 있으며, 그 뜻이 비록 크다고 할지라도,

炳如日星(병여일성) 乃易見也(내역견야)

밝기가 해와 별 같아, 보기가 쉽다.

惟其微辭隱義(유기미사은의) 時措從宜者(시조종의자)

다만 그 은미한 말과 뜻은, 때에 따라 마땅함을 따르니,

爲難知也(위난지야)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或抑或縱(혹억혹종)

혹은 억누르기고 하고 혹은 따르기도 하며,

或與或奪(혹여혹탈)

혹은 더불어 하기도 하고 혹은 빼앗으며,

或進或退(혹진혹퇴)

혹은 나아가고 혹은 물러나며,

或微或顯(혹미혹현)

혹은 감추기도 하고 혹은 드러내기도 하니,

而得乎義理之安(이득호의리지안)

이를 얻어 의리(義理)의 안정과,

文質之中(문질지중)

문식(文飾)과 질박(質朴)의 조화와,

寬猛之宜(관맹지의) 是非之公(시비지공)

너그럽고 매서움의 마땅함과, 시비 판단의 공평함을 얻을 수 있다.

乃制事之權衡(내제사지권형)

<춘추(春秋)>는 곧 중요한 일을 제정하는 저울이요,

揆道之模範也(규도지모범야)

()를 헤아리는 모범(模範)인 것이다.

夫觀百物然後(부관백물연후) 識化工之神(식화공지신)

무릇 백물(百物)을 살핀 후에야, 조화(調化)의 묘를 알게 되고,

聚衆材然後(취중재연후) 知作室之用(지작실지용)

많은 재목을 모은 후에야, 집을 짓는 법을 알게 된다.

於一事一義(어일사일의) 而欲窺聖人之用心(이욕규성인지용심)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뜻에서, 성인의 마음씀을 살피려면,

非上智不能也(비상지불능야)

뛰어난 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故學春秋者必優游涵泳(고학춘추자필우유함영)

그러므로 <춘추>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을 여유 있게 길러서,

黙識心通然後(묵식심통연후) 能造其微也(능조기미야)

묵묵히 배우고 마음으로 통한 후에야, 그 은미한 뜻을 알게 된다.

後王知春秋之義(후왕지춘추지의)

후세의 왕이 <춘추>의 뜻을 알게 되면,

則雖德非禹湯(즉수덕비우탕)

비록 그 덕이 우왕과 탕왕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尙可以法三代之治(상가이법삼대지치)

((()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自秦而下(자진이하) 其學不傳(기학불전)

()나라 이후부터, <춘추>의 학문이 전하지 않았다.

予悼夫聖人之志(여도부성인지지)

내가 애석히 여기는 것은 무릇 성인의 뜻이,

不明於後世也(불명어후세야)

후세에 밝혀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故作傳以明之(고작전이명지) 俾後之人(비후지인)

그러므로 <춘추전>을 지어 이를 밝힌 것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通其文而求其義(통기문이구기의)

그 글에 통하여 그 의미를 구하고,

得其意而法其用(득기의이법기용)

그 뜻을 얻어서 그 쓰는 것을 본받게 하는 것이니,

則三代可復也(즉삼대가복야) 是傳也(시전야)

삼대(三代)의 정치가 되돌아 올 것이다. 이 춘추전(春秋傳),

雖未能極聖人之蘊奧(수미능극성인지온오)

비록 성인의 깊은 뜻을 나타내었다고 할 수 없으나,

庶幾學者得其門而入矣(서기학자득기문이입의)

배우는 사람은 그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천문집(伊川文集)>부록제1(附錄第一篇)·<춘추전(春秋傳)>서편(序篇)

<춘추전(春秋傳)>은 공자(孔子)가 은공(隱公) 원년에서 부터 애공(哀公) 14년까지 242년 간의 역사적 기록에 대하여 정사선악(正邪善惡)의 가치판단을 내린 것인데, 이천 선생이 중요한 곳 만을 가려서 설명을 더하고, 71세 때 <춘추전(春秋傳)>서문(序文)을 지었다.그리고 자축인지건정(子丑寅之建正)이란 말은, ()나라는 자()의 달인 11월을 정월로 삼고, ()나라는 축()의 달인 12월을 정월로 삼았으며, ()나라는 인()의 달인 1월을 정월로 삼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선유지전(先儒之傳)이란, 사마천이 지은 <사기> 공자세가 에서 말하기를, "공자(孔子)<춘추>를 지었을 때 써야 할 것만 썼으므로, 그의 빼어난 제자인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춘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덧붙일 수 없었다"하였는데 이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행하지시(行夏之時), ()나라 때의 역법을 행하는 것, 곧 인()의 달을 정월로 쓰는 것을 말하며, <논어>위령공편에 말하기를, "()나라의 역법을 쓰고, ()나라의 수레를 타고, ()나라의 면류관을 착용하고, 음악은 순() 임금의 소무(韶舞)를 해야 한다[行夏之時(행하지시) 乘殷之輅(승은지로) 服周之冕(복주지면) 樂則韶舞(악즉소무)]"라고 하였다. 수레는 소박하게 나무로 크게 만든 것을 임금이 탔으며, 소무(韶舞)는 진선미를 다한 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이 말은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포선폄악(褒善貶惡)이란 착한 것을 기리어 칭찬하고 악한것을 미워하여 비방하는 것을 말한다. 또 문질지중(文質之中)이란 문식(文飾)과 질박(質朴)의 중간에 있는 것, 곧 문장의 아름다운 꾸밈과 바탕이 소박함의 중간이라는 의미로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이 대목은 이천선생이 쓴 <춘추전(春秋傳)> 서문의 전부로서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의 중요한 곳을 골라 설명을 붙인 것이다. <춘추>의 은미하고도 깊은 뜻을 헤아리고, 마음에 새겨 넣으면서 숙독한다면 성인 시대의 올바른 규범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