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명심보감 : 1.계선편(繼善篇)

강병현 2007. 8. 18. 01:32
子曰(자왈), 爲善者(위선자)는 天報之以福(천보지이복)하고 爲不善者(위불선자)는 天報之以禍(천보지이화)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화를 주신다

 Heaven rewards the person that does good by making him 'happy' and, heaven gives misfortune to the person who does evil.

 

  《명심보감》의 계선편 십여 구절은 모두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는 소박한 말들로 이어져 있다. 너무 단순 명료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공자님 말씀은 더욱 그렇다. 착한 일 하면 복 받고 나쁜 일 하면 벌받는다는 말이다.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해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을 정도가 됐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개인사로부터 나라와 사회의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악행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활개치며 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면서 요령껏 법을 어기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지혜이고, 도덕과 원칙을 꿋꿋이 지키며 사는 것은 뭔가 손해보는 일처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명심할 일이다. 선행의 궁극적 목적은 어떤 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하늘이 실제로 재물이나 권세로 복을 주거나 재앙을 내리지야 않겠지만 선행과 악행의 결과는 두고두고 남아 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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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昭烈(한소열)이 將終(장종)에 勅後主曰(칙후주왈), 勿以善小而不爲(물이선소이불위)하고 勿以惡小而爲之(물이악소이위지)하라.


  한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세상을 떠날 때에 후주(後主:그의 아들)에게 조칙을 내려 말하기를, 비록 착한 일은 작다 해도 이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 비록악한 일은 작다 해도 이를행하여서는 아니된다.

 No matter how significant, just or proper a task may be, it is imperative that it be done. And no matter how insignificant, improper or just a task may be, it is just as imperative that it not be done.

 

  중국 전국시대 때 양주(楊朱)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유명한 말 한 마디가 전한다.


“내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서 온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나는 그러지 않겠다”


후세 사람들은 이 말을 두고 무위(無爲) 사상의 극치라느니 극단적 위아론(爲我論)이라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본래는 사람들이 저마다 터럭 하나로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세상꼴이 이 모양이 되었다는 냉소의 뜻을 담은 말이다.

눈꼽만한 자기 희생을 내세워 더 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터에 이 말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한 가닥 터럭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겠는가?

순수한 동기의 작은 선행쯤이야 얼마든지 행해도 세상이 나빠지는 법은 없으리라. 오히려 누가 곡해할까, 또는 내 마음이 순수한가 저어하여 해야 할 좋은 일을 미루지는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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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曰(장자왈), 一日不念善(일일불념선)이면 諸惡(제악)이 皆自起(개자기)니라.


  장자가 말하기를,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여러 악이 모두 저절로 일어난다.

 When good deeds are not contemplated during the day, all kinds of evil are likely to erupt of their own accord.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인성론(人性論) 문제에 있어서 장자는 어느 쪽이냐 하면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의 자연적 본성(生生之性)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인간은 본디 자연과 같이 아무런 도덕적 성향도 지니고 있지 않은데, 자라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같은 종이라도 향 싼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 비린내 난다는 이야긴데, 말인즉 선과 악의 문제란 무엇이 먼저냐를 따지고 가리기보다 우선 행함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본래가 흔들리기 쉬운 인간의 마음, 선한 생각과 행실을 습관이 되게끔 만들어서라도 악의 일어남을 미연에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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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公曰(태공왈), 見善如渴(견선여갈)하고 聞惡如聾(문악여롱)하라. 又曰(우왈), 善事(선사)는 須貪(수탐)하고 惡事(악사)는 莫樂(막락)하라.


  태공이 말하기를, 착한 일을 보면 목마른 사람이 급히 물을 찾듯이 서둘러서 행동하고, 악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머거리인 양 못 들은 척하라.

태공이 다시 말하기를,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어 하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

 When witnessing a good deed, one should act with the haste of a thirsty person urgently seeking water and when hearing talk of an evil deed one should act as if one were a deaf person unable to hear. Be covetous of doing good deeds, but don't enjoy doing evil deeds.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라는 고사 하나가 생각난다.


 공자가 어느 날 승모(勝母)라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마을 이름을 듣고는 날이 저물었는데도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또 도천(盜泉)이라는 샘 옆을 지나게 되었을 때도 목이 말랐지만 그 샘물을 떠먹지 않았다고 한다. 승모는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이므로 자식의 도리가 아니며, 도천은 도둑의 샘이므로 떠먹을수 없다는 것이었다. 옛 사람의 고절한 품행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이런 마음가짐만은 본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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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援(마원)이 曰(왈), 終身行善(종신행선)이라도 善猶不足(선유부족)이요 一日行惡(일일행악)이라도 惡自有餘(악자유여)니라.


  마원이 말하기를, 일생 동안 착한 일을 행하여도 착한 일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만 악한 일을 행하여도 그 악은 그대로 남아 있다.

 Although good deeds are done throughout one's life, that goodness, on the contrary, becomes insufficient while evil that is done only on one day, lingers on just as it is.


  뜻하지 않은 불행을 당했을 때 우리는 불행의 원인으로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기보다 대개는 남의 탓을 먼저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많은 부분은 자기 잘못이 씨가 되어 돌아오는 것들이다. 흔히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까.


우리의 사회 분위기가 사소한 법 위반이나 잘못쯤은 대충 눈감아 주는 식이어서인지 선량한 보통 사람들도 무의식중에 쉽사리 잘못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한다. 또한 그로 인해 돌아오는 불이익을 제탓으로 여기기보다 〈재수가 없어서…〉라고 치부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결국 이런 사고방식이 커다란 사회적 범죄와 부정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선행과 악행에 <작다>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선행은 선행이요, 작은 악행이라고 해서 악행이 아닌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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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溫公(사마온공)이 曰(왈), 積金以遺子孫(적금이유자손)이라도 未必子孫(미필자손)이 能盡守(능진수)요 積書以遺子孫(적서이유자손)이라도 未必子孫(미필자손)이 能盡讀(능진독)이니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불여적음덕어명명지중)하여 以爲子孫之計也(이위자손지계야)니라.


  사마온이 말하기를, 큰돈을 모아서 자손들에게 남겨 주어도 자손들이 그 돈을 다 지킬 수 없고, 많은 책을 모아서 자손들에게 남겨 주어도 자손들이 그 책을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남이 모르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Because even though a great deal of money is gathered and given to one's descendants they are unable to keep an of the money and because even though many books are gathered and given to one's descendants they are incapable of reading all of them, it is better for one's ancestors to establish great and far-reaching plans for their descendents' well being by making the arrangements of the hidden virtues of which the value others have no idea of..

 

  자식이 원하면 무엇이건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요즘 부모들도 더하면 더했지 그런 마음이 결코 못하지가 않다. 문제는 긴 안목과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기보다 즉흥적이고 편리하게 자식을 키우려 한다는 데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심지어 결혼할 때까지도 온갖 뒷바라지와 물질적 조력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많다. 그러면서 부모는 이것을 자식에 대한 큰 희생으로 여긴다. “풍족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나 혹시 이것이 부모의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 왜냐하면 부모된 마음으로 자식이 스스로 능력과 품성을 키워 나가도록 지켜보며, 단지 올바른 모범만을 보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렇듯 부모의 욕심과 즉흥적 사랑을 경계하고 자식의 참된 성장을 위해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중에서 남에게 선행을 베풀고 자녀에게 보여 주는 일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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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行錄(경행록)에 日(왈), 恩義(은의)를 廣施(광시)하라. 人生何處(인생하처)에 不相逢(불상봉)가. 讐怨(수원)을 莫結(막결)하라. 路逢狹處(노봉협처)면 難回避(난회피)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곳에서인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을 가다가 좁은 곳에서 만나게 되면 피하기가 어렵다.

 Widely bestow gratitude and righteousness on the persons. You will surely meet(them) somewhere during life. Do not mingle anyone with a grudge for when going out on the road it will be difficult to avoid encountering him at a place of narrow passage.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고사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춘추시대 때 진(晉)의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첩이 있었다. 위무자는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아들 과(顆)에게 “내가 죽거든 첩을 개가시키라”고 분부했다. 마침내 임종이 가까워지자 위무자는 다시 아들을 불러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하고 애첩을 순장(殉葬)시키라고 유언했다.


위무자가 죽자 위과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남긴 아버지 말을 따를 수는 없노라 하고 첩을 개가시켰다.

훗날 진(奏)의 환공이 침공하여 전쟁에 나선 위과가 쫓기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넓은 초원에서 풀을 베는 노인 옆을 지나 도망하고 있는데, 쫓아오던 적장이 그만 노인이 엮어 놓은 풀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전에 당신이 개가시킨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전의 일을 잊지 못하여 오늘 풀을 엮어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이럴 때 평소 남에게 베푼 은혜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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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日(장자왈), 於我善者(어아선자)도 我亦善之(아역선지)하고 於我惡者(어아악자)도 我亦善之(아역선지)니라. 我旣於人(아기어인)에 無惡(무악)이면 人能於我(인능어아)에 無惡哉(무악재)고져.


  장자가 말하기를, 나에게 착하게 하는 자에게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는 자에게도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내가 남에게 악하게 하지 않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To the person who does good to me I will do good. To the Person who does evil to me nevertheless I will also do good. lf I do not do evil to others, likewise, others will not do evil to me.

 

  아무리 혼자 살고 싶어도 인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인생세간(人生世間)>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보라.

사람들은 더불어 살기 위하여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예절과 규율을 정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지혜이다.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가치들도 결국은 이로부터 나온 것이요, 우리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한다.“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왜냐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내게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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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岳聖帝垂訓(동악성제수훈)에 曰(왈), 一日行善(일일행선)이라도 福雖未至(복수미지)나 禍自遠矣(화자원의)요 一日行惡(일일행악)이라도 禍雖未至(화수미지)나 福自遠矣(복자원의)니라 行善之人(행선지인)은 如春園之草(여춘원지초)하여 不見其長(불견기장)이라도 日有所增(일유소증)하고 行惡之人(행악지인)은 如磨刀之石(여마도지석)하여 不見其損(불견기손)이라도 日有所虧(일유소휴)니라.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려 말하기를, 하루 동안이나 착한 일을 해도 복은 곧 따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지고, 하루 동안이나 악한 일을 해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닳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나 날로 이지러지는 바가 있다.

 Although one does good deeds for quite some time, good fortune may not appear to follow, but misfortune of itself is put at a distance and when one does evil for just a moment, although calamity does not start, but good fortune of itself is put at a distance. The person who does good is as the green grass of the fields in spring and its growing figure would not be viewed, but as the days go by It grows more apparent. He who does evil is as a whetstone that sharpens the knife and its being worn into oblivion would not be viewed but it is waning away day-by-day.

 

  선행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여러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중 <흥부전>만큼 주제가 뚜렷한 이야기도 없으리라.


착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는 아우 흥부와 온갖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는 형 놀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요즘은 새로운 해석이 가해져서 대책 없이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홍부보다 나름의 근면함과 계획으로 재산을 모으는 놀부를 더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볼 때, 옛날이라고 해서 흥부 같은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흥부와 같은 어진 마음을 지킬 것을 권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놀부의 근면과 계획에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서라면 올바른 방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선행과 악행은 당장에는 그 결과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은 서서히 사람을 축복이나 불행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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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日(자왈), 見善如不及(견선여불급)하고 見不善如探湯(견불선여탐탕)하라.


  공자가 말하기를, 선을 보면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악을 보면 끓는 물을 만지는 것처럼 행동하라.

 When goodness is observed, one should act as if it were not achieved and when evil is observed, one should act as if touching boiling water.

 

  어린애들이 쓰는 유아언어 중에 <맘마>와 <지지>는 그중에도 가장 처음 배우는 말일 것이다.


돌박이를 둔 어느 젊은 가정에 하루는 복면 강도가 들었다. 안방에 버티고 선 강도 앞에서 엄마와 아빠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벌벌 떠는데, 잠자던 꼬맹이가 이상한 기척에 부스스 일어났다.

어리둥절 눈을 돌리던 꼬맹이는 앞에 선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지지! 지지!” 했다고 한다. 돈이나 비싼 물건이 없기도 했지만 강도는 어이가 없었던지 쓴 웃음을 지으며 그냥 물러갔단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어린애도 이렇듯 좋은 것, 옳은 것을 찾고 나쁜 것, 싫은 것을 꺼릴 줄 안다. 그런데도 어느 것이 <지지>이고 <맘마>인지 가리지 못하는 어른이 많은 것을 보면 한심한 마음뿐이다

 

 

출처 : http://www.koreand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