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자韓非子 제1편第1篇 초견진初見秦 : 뿌리를 뽑아야 한다.

강병현 2012. 10. 11. 18:00

한비자韓非子 제1편第1篇 초견진初見秦 : 뿌리를 뽑아야 한다.

 

- 韓非子 第1篇 初見秦[2]-

 

臣敢言之. (신감언지)

신이 감히 말하옵니다.

往者齊南破荊,(왕자제남파형) 東破宋,(동파송)

옛날 제나라는 남쪽으로 초나라를 격파하고 동쪽으로는 송나라를 격파하였으며,

西服秦,(서복진) 北破燕, (북파연)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정복하였고, 북쪽의 연나라를 정복하였으며,

中使韓, 魏, (중사한, 위)

중앙에서는 한과 위 두 나라를 종속시켰으며,

土地廣而兵强,(토지광이병강) 戰剋攻取, (전극공취)

영토는 광대하고 군대는 강대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를 하였습니다.

詔令天下. (조령천하)

천하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齊之淸濟濁河,(제지청제탁하) 足以爲限 (족이위한)

제나라의 맑은 제수와 황하는 국경이 되어 주었고,

長城巨防,(장성거방) 足以爲塞.(족이위색)

장성과 거대한 제방은 요새가 되었습니다.

齊,(제) 五戰之國也, (오전지국야)

그런 제나라는 과거에 다섯 차례나 승리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一戰不剋而無齊. (일전불극이무제)

연나라와의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거의 멸망하였습니다.

由此觀之,(유차관지) 夫戰者,(부전자) 萬乘之存亡也.(만승지존망야)

이로 보건데 전쟁은 한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대사라 할 수 있습니다.

且聞之曰:(차문지왈)

또한 제가 들은 것을 말하자면,

「削迹無遺根, (삭적무유근)

「사물의 근본을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하며,

無與禍鄰,(무여화린) 禍乃不存.」(화내부존)

화가 있는 이웃과 함께 하지 말고, 화를 가까이 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秦與荊人戰,(진여형인전) 大破荊,(대파형)

진나라는 초나라와 싸워 크게 초나라를 격파했습니다.

襲郢,(습영) 取洞庭,(취동정) 五湖,(오호) 江南.(강남)

영을 습격하여 동정과 오호와 강남의 땅을 빼앗았고,

荊王君臣亡走, (형왕군신망주)

초나라 왕은 신하와 함께 진나라로 숨었습니다.

東服於陳. (동복어진)

이 때 (초나라 왕을 추격하였더라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속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當此時也,(당차시야) 隨荊以兵,(수형이병)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군사로서 초나라를 따랐다면,

則荊可擧 (즉형가거) 荊可擧,(형가거)

초나라를 얻었을 것이고, 초나라를 얻었다면,

則其民足貪也,(즉기민족탐야) 地足利也,(지족리야)

그 백성은 족히 탐했을 것이니, 이는 지형이 족히 이로웠기 때문입니다.

東以弱齊, 燕, (동이약제, 연)

동쪽에서는 제나라나 연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中以凌三晉. (중이릉삼진)

중앙의 한과 위와 조나라의 삼진을 다스릴 수도 있었을 것이며,

然則是一擧而霸王之名可成也, (연즉시일거이패왕지명가성야)

그렇게 하였다면 단번에 패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四鄰諸侯可朝也 (사린제후가조야)

그러면 사방의 제후가 조공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而謀臣不爲,(이모신불위) 引軍而退, (인군이퇴)

그런데 진나라의 모신(謀臣)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復與荊人爲和.(복여형인위화)

초나라와 강화하였기 때문에

令荊人得收亡國,(영형인득수망국) 聚散民,(취산민)

그 결과 초나라 사람은 진에 빼앗긴 국토를 다시 수복하여 이산된 백성을 모으고,

立社稷主,(입사직주) 置宗廟 (치종묘)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세워 진에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

令率天下西面以與秦爲難.(영솔천하서면이여진위난)

천하를 거느려 왕이 되어 진나라와 함께 하기는 어려웠으니

此固以失霸王之道一矣.(차고이실패왕지도일의)

이는 진실로 패왕의 도리를 잃은 이유의 하나입니다.

天下又比周而軍華下,(천하우비주이군화하)

그 후 여러 나라는 연합하여 화산 아래에 진지를 구축하였습니다.

大王以詔破之, (대왕이조파지)

대왕은 선전포고를 하여 연합군을 격파하였으며,

兵至梁郭下. (병지양곽하)

진의 군대는 위나라의 서울 양의 성 밑까지 이르렀습니다.

圍梁數旬, (위량수순) 則梁可拔 (즉양가발) 拔梁,(발량)

만일 이 때 수십일 동안만 양을 포위하였더라면 함락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則魏可擧(즉위가거) 擧魏, (거위)

양을 공격하면 위나라를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고,

則荊,(즉형) 趙之意絶 (조지의절)

위나라와 통하고 있던 조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荊, 趙之意絶,(형,조지의절) 則趙危 (즉조위)

초와 조나라 사이를 끊었다면, 조나라는 위태로워졌을 것이 틀림없고,

趙危而荊狐疑 (조위이형고의)

조나라가 위태해지면 초는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東以弱齊, 燕,(동이약제,연)

그리하여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연나라의 세력을 꺾고,

中以凌三晉. (중이릉삼진)

중앙의 한과 위와 조나라 등을 쳐

然則是一擧而霸王之名可成也,(연즉시일거이패왕지명가성야)

그러하면 일거에 패왕이 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四鄰諸侯可朝也 (사린제후가조야)

그러면 사방의 제후가 조공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而謀臣不爲,(이모신불위) 引軍而退, (인군이퇴)

그런데 진나라의 모신(謀臣)은 그리하지 않고 군대를 철수시키고,

復與魏氏爲和. (복여위씨위화)

위나라와 강화를 하고,

令魏氏反收亡國, (영위씨반수망국)

그 결과 위나라는 잃었던 국토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聚散民,(취산민) 立社稷主,(입사직주) 置宗廟令.(치종묘령)

흩어진 백성을 모으고 사직을 세우며 종묘를 설치한 것입니다.

此固以失霸王之道二矣. (차고이실패왕지도이의)

이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나라가 패왕이 되지 못한 두 번째의 원인입니다.

前者穰侯之治秦也, (전자양후지치진야)

옛날 진나라의 재상 양후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무렵,

用一國之兵而欲以成兩國之功, (용일국지병이욕이성양국지공)

첫째는 진을 위해 공을 세우고, 둘째는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두 가지 일 때문에

是故兵終身暴露於外,(시고병종신폭로어외)

병사는 평생 국외에서 싸우게 되었고,

士民疲病於內,(사민피병어내)

백성은 피폐하게 된 것입니다.

霸王之名不成.(패왕지명불성) 此固以失霸王之道三矣.(차고이실패왕지도삼의)

이것은 곧 진이 패왕이 되지 못한 세 번째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