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三 致知 49. 이천 선생이 역전의 서문을 지었다.

강병현 2016. 9. 2. 16:28

卷三 致知 49. 이천 선생이 역전의 서문을 지었다.

 

 

伊川先生易傳序曰(이천선생역전서왈)

이천 선생이 <역전(易傳)> 서문에 말하기를,

 

易變易也(역변역야)

"()은 변역(變易)하는 것이다.

 

隨時變易(수시변역) 以從道也(이종도야)

때에 따라서 변하며, 도를 좇는 것이다.

 

其爲書也(기위서야) 廣大悉備(광대실비)

그 글은, 광대하여 모든 이치를 고루 갖추고 있다.

 

將以順性命之理(장이순성명지리) 通幽明之故(통유명지고)

성명(性命)의 이치에 순응하고, 밝고 어두운 일에 통하며,

 

盡事物之情(진사물지정)

사물의 성정을 다하여,

 

而示開物成務之道也(이시개물성무지도야)

개발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는 도를 보여주고 있다.

 

聖人之憂患後世(성인지우환후세) 可謂至矣(가위지의)

성인이 후세를 근심하는 것이, 참으로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去古雖遠(거고수원) 遺經尙存(유경상존)

옛날을 떠난 지 비록 멀지만, 경서가 아직 그대로 있다.

 

然而前儒(연이전유)

그러나 앞 전의 유학자들은,

 

失意以傳言(실의이전언)

경서의 그 뜻을 잃어 버리고 말만을 전하고 있으며,

 

後學誦言而忘味(후학송언이망미)

후세의 학자들은 말로만 외우고 그 참다운 내용을 잊어 버렸으니,

 

自秦以下(자진이하) 蓋無傳矣(개무전의)

()나라 이후로는, 대체로 전한 것이 없다.

 

予生千載之後(여생천재지후)

나는 천 년의 세월 뒤에 태어나서,

 

悼斯文之湮晦(도사문지인회)

이 학문이 자취를 감춘 것을 애석하게 여겨,

 

將俾後人(장비후인) 沿流而求源(연류이구원)

장차 나중 사람들로 하여금, 흐름을 따라 그 근원을 구하게 하려는 것이,

 

此傳所以作也(차전소이작야)

<역전(易傳)>을 짓는 까닭이다.

 

易有聖人之道四焉(역유성인지도사언)

()에는 네 가지 성인의 도가 있다.

 

以言者(이언자) 尙其辭(상기사)

말로만 하는 자는, 그 문사(文辭)를 높이고,

 

以動者(이동자) 尙其變(상기변)

행동을 하는 자는, 그 변하는 것만을 높이며,

 

以祭器者(이제기자) 尙其象(상기상)

이로써 그릇을 만드는 자는, 그 상()을 높이고,

 

以卜筮者(이복서자) 尙其占(상기점)

이로써 복서(卜筮)를 하는 자는, 그 점괘만을 높인다.

 

吉凶消長之理(길흉소장지리)

길하고 흉하며 없어지고 자라는 이치와,

 

進退存亡之道(진퇴존망지도) 備於辭(비어사)

나아가고 물러나며 있고 없음의 도는, ()에 갖추어져 있다.

 

推辭考卦(추사고괘)

이 사()를 미루어서 괘()를 생각하고,

 

可以知變(가이지변)

이로써 변하는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니,

 

象與占(상여점) 在其中矣(재기중의)

()과 점(), 그 속에 있는 것이다.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군자거즉관기상이완기사)

군자가 평소에는 그 상()을 보고서 그 사()를 완미(玩味)하며,

 

動則觀其變而玩其占(동즉관기변이완기점)

행동할 때에는 그 변하는 것을 보고서 점()을 완미(玩味)한다.

 

得於辭(득어사) 不達其意者有矣(부달기의자유의)

()만을 얻고서, 그 뜻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는 있으나,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미유부득어사이능통기의자야)

()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 뜻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至微者理也(지미자리야) 至著者象也(지저자상야)

지극히 희미한 것은 이치요, 지극히 뚜렷이 나타난 것은 상()이다.

 

體用一源(체용일원) 顯微無間(현미무간)

()와 용()은 한 근원으로, 나타남과 나타나지 않음의 사이가 없다.

 

觀會通(관회통) 以行其典禮(이행기전례)

이치가 통하는 것을 보아, 그 전례(典禮)를 행한다면,

 

則辭無所不備(즉사무소불비)

모든 도가 사()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故善學者求言必自近(고선학자구언필자근)

그러므로 잘 배우는 자는,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말()을 구한다.

 

易於近者(역어근자) 非知言者也(비지언자야)

비근한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는, 말을 아는 자가 아니다.

 

予所傳者辭也(여소전자사야)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인데,

 

由辭以得意(유사이득의) 則在乎人焉(즉재호인언)

()로 말미암아 본 뜻을 얻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천문집(伊川文集)>부록제1(附錄第一篇), <이천역전(伊川易傳)>

 

이 대목은 역()의 뜻과 체()를 분명히 하고, <역전(易傳)>을 짓는 본래의 뜻을 밝히고 있다. ()은 성인의 도()를 이해하고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