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第三十七篇論難二 : 정이 아닌 상벌로 다스려라
- 韓非子 第37篇 論難(二)[7]-
趙簡子圍衛之郛郭(조간자위위지부곽),
조간주가 위나라 외곽을 포위했다.
犀楯(서순)·犀櫓(서로),
코뿔소의 가죽으로 만든 견고한 방패를 몸에 두르고,
立於矢石之所不及(입어시석지소불급),
화살이나 돌이 날아오지 않는 곳에 서서 북을 치며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는데,
鼓之而士不起(고지이사불기)。
병사들은 분발하지 않았다.
簡子投枹曰(간자투포왈): " 烏乎(오호)!吾之士數弊也(오지사수폐야)"
그래서 조간주가 말했다. “아. 우리 군사가 지쳤구나”
行人燭過免冑而對曰(행인촉과면주이대왈):
전령을 맡고 있던 촉과가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 臣聞之(신문지): 亦有君之不能耳(역유군지불능이), 士無弊者(사무폐자)。
“이것은 군주께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지친 자가 없습니다.
昔者吾先君獻公幷國十七(석자오선군헌공병국십칠),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옛날 헌공께서는 병합한 나라가 열일곱에
服國三十八(복국삼십팔), 戰十有二勝(전십유이승),
정복한 나라가 서른여덟, 전승 12회에 이르렀습니다만
是民之用也(시민지용야)。
그때도 같은 백성을 사용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獻公沒(헌공몰), 惠公卽位(혜공즉위), 淫衍暴亂(음연폭란),
헌공께서 돌아가신 뒤에 혜공이 즉위하셨으나 음란한데다가 난폭하시고
身好玉女(신호옥녀),
여자를 좋아하셨으므로 방비를 태만히 하셨기 때문에
秦人恣侵(진인자침),
진나라 사람들이 멋대로 침입하여 서울까지 진입해왔던 것입니다.
去絳十七里(거강십칠리), 亦是人之用也(역시인지용야)。
그 때도 같은 백성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惠公沒(혜공몰), 文公受之(문공수지), 圍衛(위위), 取鄴(취업),
혜공이 돌아가신 후 문공이 계승하시자, 위나라를 포위하시어 업을 뺏으시고,
城濮之戰(성복지전), 五敗荊人(오패형인),
성복 싸움에서 다섯 차례나 초나라 군사를 격파하셨으며
取尊名於天下(취존명어천하), 亦此人之用也(역차인지용야)。
천하에 이름을 떨치셨는데 그 때도 같은 백성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亦有君不能耳(역유군불능이),
그런데 지금 우리 군사들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군주께서 힘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士無弊也(사무폐야)。
우리 병사는 결코 지치지 않았습니다.”
" 簡子乃去楯櫓(간자내거순로),
그래서 조간주가 방패를 벗어 던지고,
立矢石之所及(입시석지소급),
화살이나 돌이 날아오는 곳에 서서 북을 치며 독려를 하였더니
鼓之而士乘之(고지이사승지), 戰大勝(전대승)。
병사들은 기세를 올려 대승을 거두었다.
簡子曰(간자왈): " 與吾得革車千乘(여오득혁거천승),
조간주가 말했다. “나는 가죽으로 무장한 전차 천대를 얻은 것보다
不如聞行人燭過之一言也(불여문행인촉과지일언야)。"
전령 촉과의 말을 들은 것이 더 큰 득이었다.”
或曰(혹왈) 行人未有以說也(행인미유이설야),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전령은 중요한 점을 말하지 않고 있다.
乃道惠公以此人是敗(내도혜공이차인시패),
혜공은 그 백성을 사용하여 패망했고,
文公以此人是霸(문공이차인시패),
문공은 같은 백성을 사용하여 패자가 되었다고 하였지만,
未見所以用人也(미견소이용인야)。
백성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簡子未可以速去楯櫓也(간자미가이속거순로야)。
조간주가 큰 방패를 벗어 던질 일이 아니었다.
嚴親在圍(엄친재위), 輕犯矢石(경범시석),
만일 부친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날아오는 화살이나 돌을 피하지 않고
孝子之所愛親也(효자지소애친야)。
무작정 진격한다는 것은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孝子愛親(효자애친),
이처럼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百數之一也(백수지일야)。
백 사람 가운데에 한 사람 정도가 있을 정도다.
今以爲身處危而人尙可戰(금이위신처위이인상가전),
그런데 자기 자신이 위험한 곳에 서게 되면 병사가 더욱 분발하리라 생각한 것은
是以百族之子於上皆若孝子之愛親也(시이백족지자어상개약효자지애친야),
백성의 아들인 병사가 군주를 사랑하는 것이
효자가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是行人之誣也(시행인지무야)。
그것은 전령이 멋대로 지껄인 말에 따른 것이다.
好利惡害(호리오해), 夫人之所有也(부인지소유야)。
이득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賞厚而信(상후이신), 人輕敵矣(인경적의);
상이 후하며 실수가 없으면 병사는 적을 꺼리지 않을 것이며,
刑重而必(형중이필), 失人不北矣(실인불북의)。
형이 무겁고 빠짐이 없다면 병사는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長行徇上(장행순상), 數百不一失(수백불일실);
훌륭한 행위로 상부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수백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지만,
喜利畏罪(희리외죄), 人莫不然(인막불연)。
이익을 좋아하고 벌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진리인 것이다.
將衆者不出乎莫不然之數(장중자불출호막불연지수),
백성을 지휘하는 자가 그러한 진리를 응용하지 않고,
而道乎百無一人之行(이도호백무일인지행),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하지 않을 방법을 따르고 있다.
行人未知用衆之道也(행인미지용중지도야)。
전령 촉과는 백성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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