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第三十八篇論難三 : 군주를 바꾸는 자는 믿지 못한다.
- 韓非子 第38篇 論難(三)[2]-
文公出亡(문공출망),
진나라 문공이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때,
獻公使寺人披攻之蒲城(헌공사사인피공지포성),
부친인 헌공은 내시 피에게 포성에 있는 문공을 공격하게 했다.
披斬其袪(피참기겁), 文公奔翟(문공분적)。
피는 문공의 팔뚝을 잘랐다. 문공은 적으로 도망쳤다.
惠公卽位(혜공즉위),
그 후, 헌공이 죽고 문공의 형인 혜공이 즉위하자.
又使攻之惠竇(우사공지혜두), 不得也(부득야)。
또 피를 시켜 문공을 체포하도록 하였으나 붙잡지 못했다.
及文公反國(급문공반국), 披求見(피구견)。
문공은 진나라로 돌아와 즉위했다. 피는 문공에게 만나기를 청했다.
公曰(공왈):
문공이 이렇게 말했다.
" 蒲城之役(포성지역), 君令一宿(군령일숙),
“포성의 싸움에서 헌공는 하룻밤이 지난 뒤에 나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는데,
而汝卽至(이여즉지);
너는 곧 나를 공격해 왔다.
惠竇之難(혜두지난), 君令三宿(군령삼숙),
그 다음에도, 헌공은 3일 후에 공격하라고 했다는데
而汝一宿(이여일숙), 何其速也(하기속야)? "
너는 하룻밤 뒤에 나를 체포하려고 했다. 어찌 그리 성급히 나를 공격했는가.?
披對曰(피대왈): " 君令不二(군령불이)。
피가 말했다. “군주의 명령을 배반할 수는 없었습니다.
除君之惡(제군지오),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없애는데는 다만 제 힘이 부족하여 실패하지 않을까,
惟恐不堪(유공불감)。
오직 그것이 두려울 따름이었습니다.
蒲人(포인)·翟人(적인),
공께서는 그 당시 포나라 사람이고, 적나라 사람이었습니다만,
余何有焉(여하유언)?
그들은 저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습니다.
今公卽位(금공즉위),
그런데 지금 공께서는 즉위하셨습니다.
其無蒲(기무포)·翟乎(적호)?
그러니 군주께 포나 적에 원수 되는 자는 없겠습니까.
且桓公置射鉤而相管仲(차환공치사구이상관중)。"
또 환공은 관중이 자기 허리띠를 쏘아 맞혔는데도
관중을 재상으로 발탁하였습니다.”
君乃見之(군내견지)。
이 말을 들은 문공은 그에게 면회할 것을 허락했다.
或曰(혹왈):
어떤 사람이 말했다.
齊(제)·晉絶祀(진절사), 不亦宜乎(불역의호)?
“제와 진 두 나라가 멸망하고 제사를 모시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桓公能用管仲之功而忘射鉤之怨(환공능용관중지공이망사구지원),
환공은 관중의 수완을 높이 평가하여
그가 자기 허리띠를 쏘아 맞춘 원한을 씻었고,
文公能聽寺人之言而棄斬袪之罪(문공능청시인지언이기참겁지죄),
문공은 내시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자기 팔뚝을 자른 죄를 무시할 수 있었다.
桓公(환공)·文公能容二子者也(문공능용이자자야)。
이와같이 환공과 문공 두 사람은 용서할 수 있었다.
後世之君(후세지군), 明不及二公(명불급이공);
후세의 군주를 보면 그 총명이 그 두 군주만 못했고,
後世之臣(후세지신), 賢不如二子(현불여이자)。
후세의 신하를 보건대 관중과 피처럼 현명하지 못했다.
以不忠之臣(이불충지신), 事不明之君(사불명지군),
불충한 신하가 총명하지 못한 군주를 섬기고 있으니,
君不知(군부지), 則有燕操(즉유연조)·子罕(자한)·田常之賊(전상지적);
군주가 신하의 불충을 모른다면 연조, 자한, 전상과 같은 역적이 일어날 것이며,
知之(지지),
군주가 신하의 불충을 알고 있다면,
則以管仲(즉이관중)·寺人自解(시인자해)。
신하는 관중이나 내시 피의 선례를 끌어들여 자기들의 구실로 삼았을 것이다.
君必不誅(군필부주),
그렇게 되면 군주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而自以爲有桓(이자이위유환)·文之德(문지덕),
환공이나 문공처럼 덕이 있노라고 자만하게 된다.
是臣讎而明不能燭(시신수이명불능촉),
그리하여 신하가 군주를 원수로 알고 있는데도,
군주가 그것을 간파할 만한 안목이 없고,
多假之資(다가지자), 自以爲賢而不戒(자이위현이불계),
많은 권한을 그에게 주고는 자기는 현군이라고 자만하며 조심하지 않으므로
則雖無後嗣(즉수무후사), 不亦可乎(불역가호)?
후계자가 없어진 것도 당연한 것이다.
且寺人之言也(차시인지언야), 直飾君令而不貳者(직식군령이불이자),
그리고 또 내시 피의 말은,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는 자가
충실한 자라는 것을 일부러 강조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則是貞於君也(즉시정어군야)。
그러나 죽은 군주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死君後生臣不愧而後爲貞(사군후생신불괴이후위정)。
신하로서 조금도 부끄러운 점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자만이
충실한 자인 것이다.
今惠公朝卒而暮事文公(금혜공조졸이모사문공),
그런데 피는 혜공이 아침에 죽었다고 하면,
저녁에는 그 군주의 원수였던 문공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寺人之不貳何如(시인지불이하여)?
내시가 군주에게 두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어떤 뜻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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