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七 出處 24. 너는 요순의 도(道)에 들 수가 없다

강병현 2020. 10. 29. 15:21

卷七 出處 24. 너는 요순의 도(道)에 들 수가 없다

 

門人有居太學(문인유거태학)

문인(門人)이 태학에 재적해 있으면서,

 

而欲歸應鄕擧者(이욕귀응향거자)

고향에 돌아가서 향시(鄕試)에 응시하려고 하였다.

 

問其故(문기고) 曰(왈)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蔡人尠習戴記(채인선습대기)

"채주(蔡州)의 사람들은 <예기>를 배운 자가 적기 때문에,

 

決科之利也(결과지리야)

합격하기가 유리합니다"라고 하였다.

 

先生曰(선생왈)

이에 선생은 말하기를,

 

汝之是心已不(여지시심이불) 可入於堯舜之道矣(가입어요순지도의)

"네 마음으로서는,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을 뿐이다.

 

夫子貢之高識(부자공지고식)

대체로 자공(子貢)의 높은 견식으로도,

 

曷嘗規規於貨利哉(갈상규규어화리재)

일찍이 화리(貨利)의 이익에 열중하였으나,

 

特於豊約之間(특어풍약지간) 不能無留情耳(불능무유정이)

특히 부유하고 가난한 사이에 있어서, 마음을 쏟지 않기란 어려울 따름이다.

 

且貧富有命(차빈부유명)

또한 가난하고 부(富)하게 되는 것은 천명에 달린 것인데,

 

彼乃留情於其間(피내유정어기간)

사람이 그 사이에서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多見其不信道也(다견기불신도야)

그 도를 믿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故聖人謂之不受命(고성인위지불수명)

그러므로 성인은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 하였으니,

 

有志於道者(유지어도자)

도(道)에 뜻이 있는 자는,

 

要當去此心(요당거차심) 而後可語也(이후가어야)

마땅히 이 마음을 버린 뒤에라야, 도를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 하였다.

 

<정씨유서(程氏遺書)> 제4편(第四篇)

 

여기에 쓰인 다견(多見)이란 속을 내보이는 것을 말한다. <논어> 자장편에 말하기를, "공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도저히 넘을 수가 없다. 사람이 비록 인연을 끊으려 할지라도, 해나 달을 어찌 손상시킬 것인가. 자신의 지각 없음을 훤히 보일 뿐이다 [仲尼日月也(중니일월야) 無得而踰焉(무득이유언) 人雖欲自絶(인수욕자절) 其何傷於日月乎(기하상어일월호)多見其不知量也(다견기부지량야)]"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이 대목은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아감을 급히 하려는 것을 경계하여 학문의 도란 과거를 보는것 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학문을 할 때에는 다른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논어>선진편에 말하기를, "안회는 그 학문이 도에 가까웠으나 빈곤하였고, 자공은 천명이 아님에도 재물을 자꾸 불리는 것은 억측이 잘 적중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학문과 부유함은 관계가 없는 것이며, 천명이 아닌 억측이 적중함은 재물을 늘리기위한 생각과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큰 부(富)는 운에 따르지만, 작은 부는 그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것이므로 공자는 작은 노력으로 부를 쌓아올린 자공을 인정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