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여행

명신보감 4. 효행편(孝行篇)

강병현 2007. 8. 18. 01:43

詩曰(시왈), 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哀哀父母(애애부모)여 生我勞(생아구로)셨다. 欲報之德(욕보지덕)인대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아! 슬프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시고 고생하셨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은혜가 하늘과 같아서 다함이 없도다.

 my father gave me life and my mother raised me. oh, how sad! it was my parents who gave me birth, raised me, toiled and worried. oh, i owe so much of a great debt of gratitude to my parents that i don't know how i can ever repay them the debt of gratitude as great as heaven.

 

  몇 년 전부터 찬바람이 날 무렵이면 간간이 tv 화면을 채우는 인상깊은 광고가 있다. ‘여보, 올 겨울엔 아버님댁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하는 광고. 눈 내린 겨울밤의 시골집 풍경과 함께 ‘서울 애들은 춥지나 않은지, 쯧쯧’하는 할아버지의 대사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광고였다. 이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아니 아직도 안 깔아드렸나?’하는 공연한 생심이 들면서, 늙어서도 자나깨나 자식 걱정부터 먼저 하는 부모님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광고에서처럼 부모와 분가해 사는 자식들이 대부분인 터에, 부모님께 각별한 정성을 쏟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발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작 명절 때나 찾아 뵙고 알량한 선물치레로 불효를 씻으려는 자식들에게 부모는 이 어려운 세상, 자기 식솔 건사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격려하신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장 어려운 게 부모 자식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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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자왈), 孝子之事親也(효자지사친야)에 居則致其敬(거즉치기경)하고 養則致其樂(양즉치기락)하고 病則到其憂(병즉치기우)하고 喪則致其哀(상즉치기애)하고 祭則致其嚴(제즉치기엄)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있어 기거할 때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the filial son is totally respectful when serving his parents, is completely pleasant when caring for his parents in old age, is complete1y anxious when they are il1, completely sad when they pass away and complete1y reverent when performing the ritual in memory of their having passed away.

 

  이 구절에서 공경하고(敬), 즐거워하고(樂), 근심하고(憂), 슬퍼하고(哀), 엄숙히 한다는(嚴) 것은 모두 효의 기본자세에 해당하는 말이다.

 

 다음 두 구절에서는 효의 구체적인 실행법을 예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예(禮)의 법식을 그토록 엄히 따진 공자도 효에 관해서는 외면적 형식보다 마음가짐이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 방식과 가족간의 관계가 날로 변하는 이 시대, 아침에 문안 인사 여쭙고 밤에 취침 인사 드리는 옛 법도는 지킬 수 없더라도 이 다섯 가지 마음가짐만은 가장 자연스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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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자왈), 父母在(부모재)어시든 不遠遊(불원유)하며 遊必有方(유필우방)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멀리 떠나지 말 것이며, 떠나되 반드시 방향을 알려야 한다.

 as long as one's parents are alive, one should not venture far away and when venturing out one should surely let one's parents have the right knowledge of where one is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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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자왈), 父命召(부명소)어시든 唯而不諾(유이불락)하고 食在口則吐之(식재구즉토지)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부르면 즉시 예, 하고 대답하고 머뭇거리지 않고 나오며, 음식이 입에 있으면 이를 뱉어야 한다.

 when one's father calls him, a positive response should immediately be rendered and there should be no hesitation of showing up and then if food is in his mouth it should be immediately removed.

 

 

 이 구절은 행동 하나 하나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뜻보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어렵게 생각하여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은 자식들을 너무 귀엽게만 기른 탓인지 부모 앞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어른 앞이나 밖에서까지도 주의심 없이 행동하는 젊은이들을 흔히 본다. 물론 옛날처럼 부모가 부르면 먹던 밥숟가락을 놓고 옷매무새 고치며 부모 앞에 나서는 모습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속마음을 본다고 모든 행실을 수긍하기에는 미진한 생각이 든다. 어차피 겉에 나타난 행위도 마음의 표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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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公曰(태공왈), 孝於親(효어친)이면 子亦孝之(자역효지)하나니 身旣不孝(신기불효)면 子何孝焉(자하효언)이리오.

 


  태공이 말하기를, 내가 부모에게 효를 하면 내 자식이 또한 내게 효하기 마련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를 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를 하겠는가?

 because i practice filial piety towards my parents, my son too practices filial piety to me. if i do not practice filial piety towards my parents, how can i expect my son to be filial pious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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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順(효순)은 還生孝順子(환생효순자)요 逆(오역)은 還生逆子(환생오역자)하나니 不信(불신)커든 但看頭水(단간첨두수)하라. 點點滴滴不差移(점점적적불차이)니라.

 


  부모에게 효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또한 효하고 순종하는 자식을 낳을 것이며 패륜아는 또한 패륜아 자식을 낳을 것이니, 이를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마 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어김없이 정확하지 않은가?


 as a person who is filial pious and obedient to his parents will also bring forth a son who is filial pious and obedient to him, so a person who is an immoral bastard man will also bring forth an immoral bastard son. if you can't believe it, look at the drops of water falling drop-by-drop accurately without variance from the edge of a roof.

 



  포마토(pomato:토마토와 감자를 세포 융합시켜서 만든 신종 식물)를 알고 있는 젊은이에게 콩 심은 데 콩 난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가르치던 효의 법도를 으름장 놓아가며 가르칠 수 있는 시대는 지나 버렸다. 그러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의무감과 당위성으로 적당히 얼버무린 가르침만 반복하고, 애매한 세대차만 들먹일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나서서 집안을 화목하고 즐겁게 가꾸며 웃어른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출처 : http://www.koreand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