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병법[完]

오자와 오자병법에 대하여

강병현 2012. 4. 9. 14:51

오자병법

오자 (吳子) -吳起

 

 

오자의 이름은 오기吳起이다. 본래 태생은 위나라이다. 오기가 태어날 당시는 춘추春秋시대에서 막 전국戰國시대로 넘어가는 -445년경이다. 정확한 탄생 년은 모른다. 다만 졸한 년도는 초도 왕과 같은 해인 -381년이다.

오자에 대한 기록은 전국시대나 춘추시대의 다른 위인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사기史記나 한비자韓非子등에 기록이 있다.

나라의 시골의 한 부농 집안에서 태어난 오기는 어려서부터 위인들이 늘 상 그렇듯이 남 다른 점이 있었다. 덩치는 평범했으나, 남에게 유난히 지기 싫어하고 항상 대장 노릇을 했다. 그리고 출세욕이 엄청나게 강했다.

그러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는 신분제가 엄격한 당시의 시대에서는 어림없는 꿈이었다.

출세를 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전국시대인 만큼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평민이 귀족의 반열로 올라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던 시대였다.

어찌되었건 어린 시절을 늘상 싸움과 놀이로만 보냈다.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고을에선 이미 오기가 또래의 대장 노릇을 하던 때 이웃으로 덩치가 큰 아이가 이사를 왔다. 아이들은 당연히 두목이 바뀌리라고 생각했다. 이사 온 아이는 덩치도 클 뿐 아니라 힘도 세어 이 고을에선 아무도 감히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모든 아이가 지고 오기도 역시 그러하였다. 한번 싸움에서 지면 그대로 상하가 결정되는데, 이 경우는 달랐다. 오기는 싸움에 진 다음날 덩치 큰 아이의 집 앞에서 또 싸움을 걸었다. 역시 힘에서 밀려 또 졌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날마다 오기는 매일 그 아이의 집 앞에서 싸움을 걸었다. 끈기에 지친 덩치 큰 아이는 나중에는 질려서 그만 오기에게 항복을 했다. 그래서 다시 오기는 고을 또래들의 두목이 되었다.

 

항시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오기는 성년이 되어가자, 자신의 신분으로는 어떻게 출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현의 벼슬아치들을 돈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행여나 조그마한 정장 자리라도 차지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가산만 탕진 할뿐 전혀 신분상의 이동은 이룰 수 없었다. 작은 벼슬자리조차도 얻을 수 없었고 부유하던 집안도 거덜이 나게 되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벼슬 청탁을 하면서 돌아다니기도 했으나 20세가 넘어서면서는 오기 자신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길이 출세에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란 것을 알고는 열심히 틈나는 대로 각종 병서兵書를 구해서 읽었고 얼마 뒤에는 거의 외우다 시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탁을 하고 다니는 통에 집안이 급속히 가난해져서 가끔은 양식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럴 때는 노모가 나서서 남의 일을 해주고는 삯을 받아서 끼니를 연명하는 때도 있었다. 부유한 농가가 아들 하나를 잘못 두어 순식간에 가난한 빈농으로 전락하자 급기야는 동네에서 오기를 비난하고 욕을 하며 수근 대는 소리에 오기는 더는 마을에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리의 앞에서 집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십여 명의 동리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을 흉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하는 일도 없이 싸돌아다니는 자신을 흉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으나,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오기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늘 상 차고 다니던 칼을 뽑아들고 그 자리에 있던 십여 명을 모조리 죽였다. 여러 명을 죽였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발을 붙이고는 살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달아나는 일 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급히 집으로 가서 노모에게 "제가 이제 집을 떠나면 한 나라의 재상宰相이 되기 전에는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맹세한 후 오기는 집을 떠나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재상이 되기 전에는 집에 오지 않는다." 이 말은 오기가 신분제에 한이 맺히고 출세욕에 치중하여 한 말이나 당시의 재상은 제후 바로 밑의 자리이다. 그러니까 나라에선 두 번째로 높은 자리이다. 어찌 말을 한다고 이루어지겠는가?

 

이곳저곳 도망 다니던 오기는 노나라에 이르렀다. 여기서 오기는 증신曾申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증신은 누구인가?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 증삼曾參이 있었고 그 증삼의 아들이 증신이다. *.(일설에는 증삼의 제자라고 된 곳도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오기가 이십 오 세 전후에 증신의 제자가 되었으니 -425년경인데 이때는 이미 증삼은 죽은 후이다. -436년에 증삼은 졸하였다)

워낙에 성격이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모질은 오기는 유학을 시작하자마자 금방 두각을 나타내었다. 같은 시기에 입교한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 증신도 놀라워 할 정도로 오기의 유학 실력은 향상되었다. 워낙에 월등한 실력을 보이니 각국의 대부들도 증신을 찾아왔다가 오기와 이것저것을 이야기 하고는 감탄을 할 정도였다. 급기야는 제나라의 대부 전거가 자신의 딸을 오기에게 시집을 보냈다.

오기는 학문에 더욱 매진하던 중 그의 거처를 알고 있는 친구로 부터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오기는 집을 떠날 때 한 약속 ,즉, 재상이 되어야 돌아온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고향에 가지 않았다. 공부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즉시 증신에게도 알려졌다. 증신은 너무 놀라서 오기의 재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기가 출세욕에 사로잡힌 미물로만 보였다. 당연한 이치이다. 모친상을 당해도 가지 않는 인간을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오기는 바로 파문을 당하였다.

 

갈 곳이 없어진 오기는 잠시 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일생의 기회가 왔다. 오기가 병가兵家로 대성하는 계기가 온 것이다.

이때 노나라의 재상이 공의휴였다. 오기가 몇 년 전에 공의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공의휴는 오기가 유학은 물론이고 병학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본 바 있었다. 이에 공의휴는 오기를 제나라와 마주한 군영에 막료로서 천거하였다. 재상의 천거는 바로 직책에 임명된 것이다. 오기는 국경의 부대에서 작은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 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연대장 정도이리라 생각된다. 부임할 당시의 노나라의 군대는 군대라 할 만도 못 되었다. 기강은 해이해져 있었고 강대한 제나라에게 노상 패하여 전의戰意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기는 자신의 부대원들과 모든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들은 강국으로 훈련시켰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짐도 같이 들었다.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하던 부하들도 오기에게 동조하여 모든 부대원은 한 몸 같이 되었다. 어느 날 오기는 상관을 찾아가서 이제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제나라의 군영을 들이쳐 보겠다고 했다. 놀란 상관은 말렸으나 오기는 계속 주장하여 마침내 자신의 부하들은 이끌고 미리 보아둔 적진을 향해 밤중에 들이쳤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제군齊軍은 미쳐 방비도 못하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오기는 많은 노획물과 함께 돌아왔다. 전 부대가 놀랐다.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보지 못하고 매번 지기만 했는데, 오기가 적은 군사로써 제나라의 몇 개 군영을 격파하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노군魯軍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몇 차례 더 이런 전투는 이어졌고 노군은 계속 승리 하였다. 이에 오기의 명성도 노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웃한 제후국들에서도 자못 커졌다.

 

이렇게 계속 노군에게 제군이 패하자 제왕인 선공宣公은 재상宰相인 전화田和로 하여끔 대군을 이끌고 노를 공격하게 하였다. 노나라의 군주 목공穆公은 크게 놀라 즉시 회의를 소집하였다. *. (기록엔 목공으로 나왔으나 원공元公일 가능성도 있다) 이제까지의 전투는 고작해야 성 한 두개를 사이에 두고 싸워 빼앗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제나라의 재상宰相이 상장이 되어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상황이라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노나라의 중신회의에서는 일단의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주장하는 쪽과 싸우자는 쪽으로 나뉘어 격론이 벌어졌다. 이에 공의휴는 오기를 다시 상장으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이 천거에는 반대편의 반론이 즉각 있었다.

즉, 오기의 부인이 제나라의 대부인 전거의 딸인데, 오기가 제군과 힘써 싸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전해들은 오기는 즉시 집으로 가서 아내의 목을 댕겅 잘라서 조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중신들에게 아내의 목을 내보이면서 자신의 결백함과 충성스러움을 증명하고는 상장上將의 인수印綬를 받았다.

모두들 놀라서 할 말을 잊었으나 당장은 제군을 막아야겠기에 병법에 능한 오기를 거부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터였다. 오기는 노나라의 전군을 이끌고 제군과 마주쳐서 영채를 내렸다.

제군의 상장 전화田和는 노군을 그리 강한 상대로 보지 않았다. 오기가 상장이라곤 하나 작은 전투에서 여러 번 이겼을 뿐 큰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경시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군영을 탐지할 작정으로 부하 장축을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제군이 사신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듣자 오기는 즉시 용맹한 병사는 후방으로 돌렸고 병약하고 늙은 병사들로써 앞쪽의 군영을 차렸다. 자신의 군막도 물론 병약한 군졸로 채웠다. 그리고는 식사도 장병들과 같이 하고 있었다.

이때 장축이 도착하였다. 마주 않은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축이 물었다.

"귀군은 우리 제나라의 군대와 맞서 싸울 자신이 있소?" 오기가 답했다.

"저는 유학을 배운 유학자로서 군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오, 다만 지난 몇 번의 소규모 전투에서 이겼다고 왕께서 나에게 이런 대군을 맡겼는데, 너무 벅차오, 서로 화해하고 싶을 따름이오."

 

장축은 이미 오면서 군영을 둘러보니 모두 기백이라고는 전혀 없는 힘없는 병사들로 가득 찼고, 상장이란 자가 병졸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는 꼴을 보고 또 지금 대화에서 보니 조금도 오기에게서는 전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속으로 비웃고는 작별을 고했다.

장축이 떠나자마자 오기는 전군全軍을 소집했다. 정예병을 앞세우고 장축의 뒤를 바로 따랐다. 장축은 이런 오기의 행동을 전혀 모르고 제군영으로 돌아갔다. 장축은 돌아가서 전화에게 보고 들은 바를 자세히 고했다. 전화는 원래부터 노군魯軍을 얕보고 있던 터에 장축의 이런 보고를 듣고는 저으기 안심이 되어 별로 경계를 하지 않고 모두 풀어져서 밤을 보냈다. 제나라 군사들도 이런 정황을 알고는 별로 경계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등 어수선하게 밤을 보내고 나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제나라 군영이 잠잠해지자 오기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쿵! 하는 철포소리와 함께 노군이 밀물처럼 제나라의 군영으로 밀어닥쳤다.

잠을 자다 적군을 맞이한 제군들은 도저히 싸울 용기도 없었거니와 제 무기도 휴대하지 못하고 그냥 죽어나자빠졌다. 사방에서 들려오느니 제나라 군사들의 비명소리 뿐이었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전화는 비장이 깨워서야 일어났다. 잠시 정신을 차린 뒤에 높은 수레에 올라가서 사위를 살펴보니 이미 군영은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노군에 의해 제나라 군사들은 썩은 짚단이 쓰러지듯 쓰러지고 있었다. 전화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른 수레위에서 바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이제 걸음이 빠른 자만이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 급히 저의 나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오기는 철저하게 제나라군을 짓밟고는 각종 병기와 군량, 마초, 군마 등을 산더미 같이 싣고는 노나라로 돌아갔다.

대패하여 제나라로 돌아가는 와중에 전화가 장축을 탓한다.

 

"이게 다 선생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서 빚어진 일이요, 어찌하면 좋단 말이요?"

장축이 답한다.

"사실 제가 노군 진영에 갔을 때는 노약병들만이 있었고 군기軍紀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장축이 죄책감에 말을 잇지 못했다.

"허어! 참! 오기는 이제 보니 전대前代의 사마양저司馬穰나 손자孫子같은 인물인가 하오! 큰일이요

우리 제나라에는 정말로 강적이 등장했소!"

전화가 탄식하듯 말했다.

 

이제 오기의 이름은 중원 전체에 알려졌다. 노목공은 오기를 즉시 상대부에 임명했다.

노나라 신하 중에는 오기를 모두가 다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출신 성분이 미천할 뿐 아니라, 벼락출세한 오기는 몇몇 중신들의 좋은 표적이었다. 더욱이 노목공은 심약한 인물로써 이제 다시 제나라가 전열을 정비한 다음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는 걱정을 하였다. 이런 때가 모략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때이다.

군주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이때를 모략가는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오기는 위나라에서 우리 노나라로 올 때 십여 명을 살인하고는 도망쳐 온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자신의 모친이 돌아가셨는데도 거상居喪하지 않고 이곳에서 그냥 있었으며 왕께서도 아시듯이 저번에 자신의 아내를 죽여 상장군의 인수를 받은 일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자를 곁에 두었다가는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노목공이 들어보니 이런 자를 곁에 두었다가는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닥쳐올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불현듯 두려움이 전신을 감쌌다. 그래서 오기를 죽여 제나라와의 화해를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회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내신 중 오기와 자주 왕래하던 이 하나가 즉시 오기에게로 달려갔다.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오기는 국난을 극복해주고 군대를 강하게 해준 자신을 오히려 죽이려 한다는 것에 대해 이를 갈면서 즉시 노나라를 떠났다.

 

이후 오기는 위나라로 들어갔다. 위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애초에 진나라가 있었다. 춘추시대에 전 제후국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후대에 들어서 조씨, 위씨, 한씨등 세 성씨가 군주를 없애고 자신들이 나라를 삼등분하여 나누어 가진 후 다스렸다. 그 중 하나가 위나라이다.

오기가 위나라로 들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위나라는 문후文侯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위문후는 웅지가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도 영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도 남다른 안목이 있는 군주였다. 당시는 이제 막 전국 시대로 들어선 때여서 서로 날만 새면 전쟁이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뺏기 위해 늘 상 싸우던 때이다. 오죽하면 전국戰國시대라고 하겠는가?

 

이런 때에 위나라의 임금이 문후였다. 악양을 등용하여 중산국을 정벌하고 땅을 넓혔으며, 서문표를 등용하여 업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양곡을 충분히 저장하였다.

 

오기는 위나라로 들어가서 우선은 이곳저곳을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살폈다. 그런 연후에 위나라의 실력자인 적황翟璜의 집으로 들어갔다. 적황은 이전에 이미 악양을 천거하여 중산국을 정벌하여 위나라에 편입시켰고 서문표를 천거하여 업 땅에서 농지를 개간하고 수리사업을 잘 펴 황하 변을 위나라의 곡창 지대로 만들어 놓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적황은 인물을 보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적황과 이것저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적황은 오기가 듣던대로 역시 엄청난 인물임을 즉각 알아 차렸다. 즉시 위문후에게 천거하여 같이 문후를 뵈었다.

문후가 말했다.

 

"선생은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였소?"

 

"신이 주군은 뵙고자 한 것은 위나라를 부국 강병하게 하여 칠웅七雄 (전국시대에 일곱 개의 강국이 있었는데 그 나라들은 한韓, 위,조, 제, 진, 초, 연이다) 중 으뜸으로 만들어 주기 위함 입니다" 오기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은 과인에겐 필요가 없소, 과인은 다만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자 할뿐 강병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요"

 

문후가 애써 표정을 감추면서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오기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그냥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진 정치를 펴신다면 당연히 군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안읍(위나라의 수도)을 이곳저곳 다녀보니 목공木工은 수레바퀴에 철판을 씌우고, 또한 화공畵工들은 가죽을 무드질하고 각종 채색을 하는 것을 보았으며, 대장간에서는 좋은 철로 검劍과 모矛를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대부가 타는 수레바퀴에 철판을 씌운다는 것을 저는 들어 본 일이 없으면 또한 가죽을 무드질하고 책색을 하는 것이 궁궐을 수놓을 휘장으로 쓴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임금께서는 이것이 어떤 것에 소용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아보고 온 오기를 문후는 더 이상 시험하지 않았다.

 

"그래 선생은 어떻게 나를 도울 작정이요?"

 

오기가 말했다.

"위나라의 국고는 지금 충실하고 가호는 가히 수십만 호에 이르며 나라의 땅은 둘레가 삼천리입니다. 인재도 많고 군사도 많습니다. 전차는 600승 (1승은 육도에 따르면 72명의 보병이 따른다) 이나 되며 기병은 5천입니다. 이런 전력으로 중국의 패자가 아니되는 것은 다만 이들을 적절하게 부리는 장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은 그 장수가 되고자 합니다. 행여 주군께서는 이런 인물을 찾고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문후가 전상을 탁 치면서 일어섰다.

"내 선생의 눈을 속일 수 없구려 용서하시구려!"

 

문후가 만면에 웃음으로 "내 오늘은 매우 기쁜 날이오, 오늘은 모두 거하게 한 잔 하십시다."

 

재상 이극과 적황등을 바라보면서 오기의 손을 이끌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문후에게 오기가 있다는 것은 옛날에 주무왕에게 태공이 있는 것이나 진배없고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여겨졌다.

당시에 위나라는 사방에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말하자면 중국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으로는 조와 연이 있었고 남으로는 초, 서로는 진과 한이 위치하고 동으로는 제나라가 위치한다.

그러므로 위나라는 군사적 강국이 되지 않고는 늘 상 사방에서 침략을 받는 그런 위치이다. 대체로 다른 나라들은 한 방면이거나 세 방면에 강국을 두고 있는데 반해 위나라는 강국에 둘러쌓여 있는 형세였다.

특히나 당시에는 진나라가 특히 강해지고 있던 때였다. 예전부터 진나라는 서역 멀리 위치해 있어 중원에는 특히 위험이 되지 않았으나 진목공秦穆工이후로 매우 강대해져 모든 나라가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는 강국이었다. 위나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골치가 아프고 위험한 존재였다.

문후도 늘상 이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라의 정병은 거의 진나라와 접경인 서하西河에 배치해 놓았으나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런 차에 오기를 만난 것이니 문후는 즉시 오기를 서하태수에 임명하였다.

 

서하는 지리적으로 공격도 어렵고 방어도 어려운 곳이다. 서하는 황하의 중류이다. 황하는 일반적으로 서쪽의 곤륜산에서 시작하여 동의 황해로 흐르는데, 바로 흐르지 않고 북쪽으로 흘렀다가 다시 남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3천리를 내리 흐른 후 다시 동동북쪽으로 해서 산동으로 빠져 황해로 흘러든다.

서하는 바로 남쪽으로 흐르는 그 3천리의 부근이다. 이 강을 경계로 진과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주위는 험한 산과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감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늘 상 배를 이용해야 양국은 통할 수 있는 곳이다. 물살이 빠르고 배가 접안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보니 관문만 굳게 지킨다면 그야말로 '한 사람의 장사가 천 명의 적을 막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이런 땅은 늘 전쟁이 있게 마련이다. 잠시도 평온한 때가 없는 것이다. 진나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중원으로 진출해야하는데, 그곳을 위나라 막고 있는 형세이니 여하튼 이곳을 차지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나라에서는 유능한 장수로 진나라를 막아야 하는 절대적인 요지였다.

 

서하로 부임한 오기는 다른 장수와는 다르게 근신 몇 명만 데리고 행색도 초라하게 부임해 갔다. 임지에 도착해서는 성의 주위를 그냥 나그네처럼 둘러보면서 다녔다. 행색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초라해서 서하병 누구도 그가 태수인지 몰랐다. 그냥 신임태수가 온다는 기별은 있었으나, 태수의 행차행렬이 보이지 않고 앞서 마중나간 관리들에게도 연락이 아직 없는지라 그냥 평시대로 지낼 뿐이었다.

몇 칠에 걸쳐 서하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오기는 드디어 인수를 꺼내들고 관사로 들었다.

많은 장군들과 관리들이 도저히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의 예로 보자면 떠들썩하게 부임하고 부임 후에는 바로 군사를 사열하고 잔치를 열어 전군全軍을 위로하는 그런 행사를 해야 하는데, 전혀 없고 그냥 평범했고, 또한 그 이름난 오기가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부장副將이 말한다.

 

"장군께서는 왜 부대 사열도 안하고 새로운 령令도 내리지 않으십니까?"

 

오기가 답한다.

"이미 다 보았네! 난 몇 일전에 도착하여 이곳의 지형을 살피고 각각의 관의 수비 정도를 관찰했었네. 관문을 지키는 병사의 눈초리가 예리한 것으로 보아 예기가 그대로 살아 있고 군사들 누구도 해이해진 것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군대의 사열은 하지 않아도 되며 이 정도의 군대라면 어느 정도 더 훈련을 하면 바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네."

 

"이제는 군량등 각종 물자를 보아야겠네."

 

이러면서 오기는 친히 각종 병기의 상태며, 군량 사정 등을 모조리 점고했다.

제장諸將들은 더 이상 오기를 의심하지 못했다. 이제껏 부임한 어떤 태수보다도 오기는 철두철미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진중이 동요했다.

"진병이 습격한다" 하는 소리와 함께 아닌 게 아니라 성 밖에서 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기는 장대將臺로 올라가 상황을 살핀다.

 

그러곤 하는 말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평시대로 제자리를 지키면 적은 그냥 돌아갈 것이다"

 

잠시 후 정말로 진군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제장들 모두가 놀랐다.

 

"어찌 그들이 그냥 돌아가리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간단하지 않은가? 그들의 대오가 흩어져 있었고, 진군 속도가 너무 느리고 또한 병사들이 병기는 아무렇게나 잡고 그냥 북만 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것이 공격을 하는 군사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저들은 단지 이곳의 상황과 우리의 대응을 살펴보러 온 것이다"

 

그러면서 제장들에게 호통을 친다.

"장수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 동요해선 아니 된다. 마치 정원을 걷듯 군사를 보며 군세를 살펴야함에도 불구하고 어찌 일개 병졸들과 마찬가지로 호들갑을 떨면서 이리저리 날뛴단 말이나?"

 

제장들은 머슥해지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었다.

 

오기는 병사들을 대함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어떤 장군들과 달랐다. 오기는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대하듯 했다. 늘상 식사도 같이했고, 장비를 나를 때도 같이 했으며 잠자리에 들 때도 군사들이 모두 자는 모습을 둘러본 후에 자신도 잠자리에 들었다. 장수가 이러니 아래의 제장들이 교만할 수가 없었다.

다소 체통이 깍인다고 생각을 했지만 다행이 모두 다 오기를 잘 따라 주었다. 이런데 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간간히 쳐들어오는 진병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지형을 이용하고 시의 적절하게 군사를 운용하여 매번 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고 적병은 많은 타격을 받고 물러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감히 진나라 병사들이 과거와 같이 자주 분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잠시 평온한 시기가 계속 되었다.

어느 날 오기는 전군에 소집령을 내렸다.

 

"이제 전투가 벌어진지가 오래되어 우리나 저들 진나라 군사나 모두 약간은 풀어진 상태다. 병법에 이르길 이런 때 허점을 찔러 들어가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이다. 오늘밤 필시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이니 전군은 채비를 차리고 출동 준비를 하라"

 

평소 훈련이 잘되어 있는 정예군 일만 오천을 추렸다. 보병 5천에 기병 1만이었고 전차는 없었다. 삽시간에 진군 준비를 마치고 모두 약간은 흥분된 상태에서 진군 명령을 기다렸다. 이윽고 땅거미가 내려앉자 진군 명이 떨어졌다. 모두 전선戰船에 올라 강을 건너갔다.

강을 건너 대오를 갖추기 시작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오기는 즉시 빗속을 뚫고 진군하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진나라의 관문이 있다. 여기서 오기는 보병 5천을 떼어놓고 인시를 기해 성을 공격하라 명하고는 1만 기병을 샛길을 통해 진나라의 내륙으로 들어갔다. 두번째 성이 나타나자, 다시 5천 기병을 그곳에 남겼다.

 

"그대들은 말을 멀리 매어놓고 성 가까이 다가가서 매복하고 역시 인시를 기해 성을 함락시켜라"

 

다시 오기는 나머지 5천 기병을 더 깊숙한 진나라의 내륙으로 진군시켰다. 세번째 성에 다다르니 축시를 지나고 있었다. 모두 성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말을 매어놓고는 가져온 양식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성을 살피니 비는 오고 사위는 캄캄한데 성안도 역시 조용하다. 누가 감히 적들이 앞의 두성을 지나쳐 이곳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리라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병법에 이르길 그믐밤은 길이 보이지 않으니 병사를 이동시키고 전투를 하는 것은 금물로 되어 있었다. 오기는 이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인시를 기해 성을 공략하니 거의 진나라 군사는 잠에 빠져 있었고, 병사의 수도 이삼천 명 정도였다. 삽시간에 성을 점령하고 나니 날이 밝았다. 성루에는 이미 위나라의 깃발이 꽃여 있었다. 이미 지나온 두성도 마찬가지로 점령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위나라의 영토는 드디어 황하 건너편까지 확대되었다.

이틀이 지나자, 앞의 두 성과 서하에서 다시 3만의 보병이 도착하였다. 오기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진나라의 내륙으로 군사를 휘몰았다. 적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병법에 이르길 '천둥소리에 귀를 막을 시간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빠른 부대 이동이야말로 승리의 첩경인 것이다.

 

주변에 있던 낙음과 합양성이 순식간에 방비할 틈도 없이 떨어졌다.

서하와 마주했던 처음의 성인 소량성은 다소 방비가 있었지만 지난 얼마 동안 전투가 없었고, 비도 오는 밤이어서 경계는 풀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최전 두의 성이어서 군사들이 제법 있었지만 나머지 내륙의 네 성은 그야말로 무인지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기는 바로 이런 허점을 노리려고 부임한 이후로 그동안 한 번도 서하를 넘어서 진나라를 공격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수비에 허점을 드러내게 하려는데 오기의 뜻이 있었던 것이었다. 진나라는 난데없이 순식간에 다섯 개의 성이 위나라로 넘어가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계속하여 성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펼쳤으나 오기의 능란한 방어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오기는 늘 군사들을 내 몸같이 아꼈는데, 이런 기록이 있다. 군사들이 병이 나고 전투에서 다치면 오기는 꼭 문병을 가서 위로하였으며, 전사자의 가족을 매년 찾아보고 사람을 보내어 양식을 대주었다.

이러니 군사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으며, 싸워서 지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부대를 순시하던 중 병사 하나가 등에 등창이 생겨 주변에서 고름을 짜주고 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오기가 보더니 손수 살펴보며 입으로 상처에 대고 고름을 빨아내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늘 상 많이 보아오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소문은 서하에 이미 퍼져 있었다. 마침 오늘 그 병사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자 그 어머니는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주변에서 말했다.

 

"장수가 일개 병졸이 당신 아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는데, 이는 영광스런 일이니 기뻐해야지 어찌 운단 말이오."

 

"애구! 모르는 소리 마시요, 몇 년 전에 저애 애비가 군에 있을 때 오기 장군이 애 아비의 고름을 빨아낸 적이 있었소, 그리고, 나서 아이의 아버지는 오기 장군을 위해서는 죽음도 아깝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 늘상 전투에서는 앞장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소. 그러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죽었소. 이제 내 아들도 똑 같이 그리 될 것이 뻔한데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소?"

 

주위의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오기는 법가의 사상을 이어받은 장수이기도 하다.

법가의 사상은 위로는 강태공부터 관중, 오기, 상앙, 제갈량, 왕맹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다 일세를 풍미한 영웅들이다.

이중 특이한 것은 전국시대 사람인 오기와 상앙만이 심상치않은 죽음을 맞는다.

사기에 의하면 상앙은 오우분시五牛分屍 되었다고 쓰여있다.

 

법에 대한 일화가 한 가지 전해온다.

 

오기가 황하 서쪽에 위치한 진나라의 다섯성을 점령한 후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오거나 원래 거주하던 진나라 백성이 이제는 위나라의 백성이 되었는데, 농사를 짓다보면 가끔 진나라의 가까운 성에서부터 군사들이 수십에서 수백기가 무시로 나와서 백성들을 괴롭혔다.

성이라고 해야 큰성에 부속된 작은 성으로서 대군을 소집해 공격하면 일시에 함락을 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이쪽도 많은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몇 날을 심각하게 생각하던 오기는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문득 어느 날 남문 밖에 깃대를 꽂아 놓고는 방을 붙였다.

[이 깃발을 북문 앞에 옮겨 꽂는 자에게는 상을 내린다] (*)

 

백성들은 평소 오기를 존경했으나, 이것은 장난으로 여겼다.

물론 길은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별로 일 같지도 않은 것을 시키면서 상을 준다니 썩 내키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개중에 약간 대낮부터 술기운이 돌던 젊은이 하나가 깃대를 쑥 뽑아들더니 북문 앞에 꽂았다.

그러자 즉시 보고를 접한 오기는 그 젊은이를 불러서 상금으로 쌀 한 자루를 주었다.

 

이번에는 오기는 들판에 있는 큼직한 돌들을 성루까지 옮겨 놓으면 또한 상을 내린다는 방을 붙였다.

사람들은 저번의 경우를 본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앞을 다투어서 돌을 성루로 날랐다.

오기는 돌을 옮긴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쌀을 한 자루씩 상으로 주었다.

백성들은 오기는 절대로 허언을 하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알았고 오기의 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기세였다.

 

오기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오기는 백성을 방을 내어 모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진나라의 그 작은 성을 가리켰다.

 

"저 성을 점령하라!"

 

오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성들은 손에 손에 농기구며 각종 무기를 잡고는 득달같이 진나라의 성으로 달려들었다.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진나라의 성에서는 방비가 없었다.

순식간에 성은 점령당하였다.

오기는 성에 있는 부고를 열어 곡식을 성에 들어온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제는 백성들도 농사를 지을 때 진나라 병사들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에게 늘상 공포의 대상이었던 작은 성을 그들의 손으로 손수 빼앗은 것이었다.

(*).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한 세대 정도 지난 후에 상앙의 경우에도 똑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상앙이 배운 것인지, 후세의 사가들이 착각을 해서 이 두 사람에 대해 모두 쓴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기가 서하태수로 일한지 어느덧 14년 정도가 흘렀다.

위문후가 왕에 재위한지 50년이 되는 해였다. 이해에 문후는 훙하였다.

 

이때 태자 격은 중산땅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곳은 위나라의 본토에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가는 길도 조나라 땅 사이로 난 길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중산땅은 빼앗아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해서 격론이 벌어진 끝에 악양을 보내 빼앗은 곳이다.

태자 격이 왕위를 이으니 이가 바로 무후武侯이다. 무후는 용맹하고 지략이 풍부하며 또한 명석했다.

그러나 아직은 나이가 어려 나라를 잘 보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멀리 떨어진 중산땅에서 오래도록 있었으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풍부한 지략을 문후에게 가르침을 잘 받지 못한 상태였다.

늘 상 그렇듯이 자신이 남보다 총명하면 다른 사람을 깔보고 방자해지면서 호전적인 왕이 되는 법이다.

무후가 왕위에 오른 후 서하를 순시하면서 오기와 함께 황하에 배를 띄우고는 배위에서 유흥을 즐길 때였다. 이미 술이 한잔 들어 간데다 주변은 모두 깍아지는듯한 절벽이었고 물살은 거세었다.

유속이 다소 완만한 곳에서 닻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무후가 말한다.

 

"역시 서하는 천연의 요새요, 감히 이런 곳은 어찌 진나라가 올 수 있겠소."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은 하늘이 위나라에 준 천연의 보배요, 서하만 있다면 진나라는 걱정이 없소"

 

오기가 간한다. "나라의 존망은 천연의 요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다스리는데 있읍니다. 대왕께서는 덕을 쌓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어야 합니다."

 

무후는 술맛이 싹 달아났다. 얼굴빛이 싹 바뀌면서 흥이 깨지고 바로 안읍으로 돌아갔다.

위나라에서는 오기보다 더 한 공적을 가진 신하는 없었다. 그래서 무후는 늘상 오기가 경계의 대상이었다. 언제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한 전국시대이다보니 그 가능성은 언제고 실현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후는 오기에게 재상의 직위를 맡기지 않고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발탁하였다. 전문은 박식한 유학자로서 문관이다.

오기는 전문이 재상직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궁정으로 들어갔다. 마침 밖으로 나오는 전문과 마주쳤다. 오기가 대뜸 눈을 부라리면서 말한다. "내 오늘 그대와 더불어 누가 더 위나라에 공적이 있는지 견주어 볼까 하오" 전문은 역시 노련한 학자이며 정치가였다. "가르침을 주시지요" 전혀 위축되는 말투가 아니었다.

 

"삼군을 통솔하고 외적을 막아 나라를 보위하는데 있어서 그대와 나 중 누가 우월하오?"

"제가 감히 그대를 따르지 못합니다"

"호랑이 같은 진나라가 감히 위나라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 조나라가 우리에게 조공을 받쳐 화친을 구하게 하는데 그대와 나 중 누가 우월하오?"

"제가 감히 그대를 따르지 못합니다."

"백성을 위무하고 곡창을 잘 지키어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조정을 안정시키는데 있어서 그대와 나 중 누가 더 우월하오?"

"제가 역시 그대만 못합니다."

오기가 전문을 나무라듯 말한다.

 

"그대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한데 어찌 내가 그대의 아래 자리에 있어야 한단 말이오?"

 

전문이 차근히 대답한다.

"현재 왕은 나이가 어리고 이제 막 즉위하였소, 이런 때에 그대와 같은 신하에게 재상의 직위를 주어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다면 왕은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심정일 것이오. 그러니 지금은 내가 재상에 있는 것이 그대가 재상직에 있는 것보다 적당하오이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는 시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오만....,"

 

이 말을 듣자 오기는 금새 상황을 알아차렸다.

 

"역시 그대의 말이 옳소" 오기는 읍을 한 후에 물러갔다.

 

이후로 6년이 흘러 전문이 죽었다. 오기는 이제야 말로 자신이 재상직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재상으로는 왕조王錯(왕착이라고 번역된 책도 있다)가 임명되었다.

왕조는 무후가 태자 시절에 태자태부로 있으면서 무후와는 아주 각별하고 친한 사이였다. 학식은 별로였으나 워낙에 권모술수 뛰어나고 무후와 사이가 가까운 관계로 이번에 재상으로 임명된 것이다.

오기는 재상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상에도 가지 않고 공부만을 하다가 증신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했었다. 위나라에서 오기의 이름은 왕보다도 높았다. 그러나 무후가 즉위한 이후로는 늘 한직에서만 머물고 있다. 무후는 절대 오기에게 실권이 있는 직책을 맡기지 않았다.

왕보다 신하의 이름이 높으면 반드시 죽는다. 이는 전에도 그랬고 후세에도 계속 그랬다. 철칙이다.

오기가 즉시 그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노나라에서도 목숨이 경각에 달하여 겨우 위나라로 달아났는데, 이제 이곳에서도 또 달아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때를 맞추어 왕조가 모략을 획책한다. 무후에게 속삭인다.

 

"요즈음 조나라와 제나라에서 오기에게 재상직을 내밀면서 오기를 청한다 합니다. 대왕께서는 속히 방안을 강구하소서."

 

"오기는 내 비록 중히 쓰지는 않으나 위나라에 대한 충정만큼은 누구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소, 무슨 근거라도 있소이까?"

 

"대왕께서는 신중히 생각하시옵소서, 지금 위나라를 모든 제후국 중 으뜸으로 올려놓은 인물이 바로 오기입니다. 그는 지금껏 서하에서 수 십 차례 진나라와 싸움을 펼쳐 모두 다 승전한 과거의 전양저등도 오기를 따르지 못합니다. 바로 손무孫武와 오자서伍子胥등에 비길만한 걸출한 인물입니다. 그런 자를 계속 대왕께서는 한직에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가 오기에게는 매우 중대한 때입니다. 대왕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면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입니다"

 

무후는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니 아닌게 아니라 사태가 심각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왕조가 못을 박는다.

"대왕께서는 오기를 쓰시려거든 중히 쓰시고 아니면 아예 죽여 버리십시오."

 

오기는 궁밖에 있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존경하는 많은 신하들이 있었고 내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기는 눈물을 머금고 위나라를 떠났다. 몇 칠을 고심한 한 끝에 초나라로 향했다.

떠날 때는 소리없이 떠나야 한다. 알려지는 순간 바로 죽음이다.

가솔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말에 올라 초나라로 달음쳐 갔다.

스쳐지나가는 강산에 그이 모든 피땀이 묻어 있는 곳이다. 감회에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시운을 탓 할뿐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초나라의 관문에서 자신을 알리고 귀순을 요청했다.

 

오기가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달아나게 되는데, 사기에서는 한 가지 이유를 더 들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재상 전문이 죽고 다음 재상으로 공숙公叔이 재상이 된다.

공숙은 오기가 눈에 가시이고, 능력도 자신보다 뛰어나므로 재상의 자리는 언제고 바뀌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기를 없애는 것이 상책이었다.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데, 그의 하인 하나가 계책을 낸다.

 

"오기는 청렴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그 자신이 남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예전의 신생申生(-600년대 중반에 죽은 진晉 헌공의 세자) 같은 자입니다.

이런 자를 없애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모욕감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는 못을 박으면 끝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계책을 일러 준다.

원래 공숙의 아내는 무후의 여동생이다. 그런데 무후에게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시집을 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지아비가 죽고 혼자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문후의 딸이 홀로 남아 있었다.

공숙은 오기를 포함하여 몇몇 대신들은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는데, 갑자기 공숙의 부인이 연회장으로 들어오더니 무엇인가 화를 내면서 공숙의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마구 화를 낸다.

모두가 혀를 끌끌 차면서 무엇이라 말을 하려 하려 하였으나, 상대는 현왕의 동생이다.

연회의 분위기는 냉냉해 지면서 하나 둘 자리를 떠 모두 돌아가고 말았다.

이 일이 있으지 얼마 후 오기는 무후의 부름을 받았다. 무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뒤에 자신에게 홀로 된 누이가 있는데, 공주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오기는 얼마 전 공숙의 집에서 공주가 기세등등하게 남편을 무시하고 막된 행동을 하는 것을 본지라 일하에 거절하였다.

이미 귀뜸으로 공숙과 이야기를 마친 무후는 오기가 자신에게 전혀 마음이 없음을 느끼고 죽이고자 마음을 먹었다.

 

오기가 초나라에 도착을 했을 때, 초나라는 도왕悼王이 다스리고 있었다. 도왕은 심지가 굳고 영명한 왕이다. 이미 왕위에 있은지 12년 째에 접어든다.

오기가 초에 도착하여 대충 영성(초의 도읍지)을 돌아보고, 이것저것을 살핀 후에 도왕에게 아뢴다.

 

"초나라는 사방으로 만리가 넘는 전국全國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가호도 백만호가 넘고 군사도 항시 백만명을 유지하고 있읍니다.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늘상 남방에 머물며 중원 진출을 못하는 것은 군사를 적절하게 쓸 수 있는 장수가 없는 탓입니다. 대왕께서 저를 써 주신다면 5년내에 초나라를 최강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때 신을 벌해 주십시오, 다만 제가 일을 함에 있어 대왕께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어떤 방해도 모두 막아 주셔야 합니다."

 

도왕이 응락하고는 오기를 승상으로 삼았다. 초나라에서는 승상이 다른 나라의 재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드디어 일생의 꿈을 이룬 오기는 즉시 개혁에 착수 한다.

우선 새로운 관제를 제정하여 선포한다.

 

첫째, 꼭 필요한 관직만 남기고, 통합하여 관리의 숫자를 대폭 줄인다.

둘째, 대신의 자제라 할지라도 나라에 공이 없으면 놀고먹을 수 없다.

셋째, 공족은 삼대를 지나면 봉작이 없어지고, 왕족은 오대를 지나면 봉작이 없어진다. 이후로 국록을 축내는 자는 엄벌한다.

 

이 밖에 남의 물건을 훔치면 손목을 자르고, 거짓말을 한 자는 혀를 잘랐으며, 뇌물을 수수한 자는 양자 모두 군중들 앞에서 매를 때리고 가산을 몰수했다.

 

이렇게 관제를 시행하자, 국고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기는 넘쳐나는 국고로 군사를 양성하였다. 이전까지 초나라 군사의 대우는 형편없었다.

장군들과 그 휘하에 부장급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입에 풀칠을 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오기는 모든 군사의 봉급을 이전보다 세배를 올렸다. 그리고 공이 있으면 바로 위급으로 올려주었다.

이렇게 제도를 시행하자, 군사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군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무예를 익히고 장수는 병법을 연구하였다.

이렇게 삼년이 지나자 오기는 군사를 출동시켜 한, 위, 제, 진등을 쳐들어가 많은 영토를 넓혔으며, 또한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여 초나라에 편입하였고, 북으로는 진과 채를 병합하였다.

오기가 초나라에 와서 도왕과 약속한 일이 마침내 이루어 졌다.

초왕과 오기 그리고 모든 백성은 좋아했지만, 오기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전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들은 작록이 깎이고 봉토가 줄었으며, 그리고 자손들은 모두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

전에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나라의 녹으로 편히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왕족은 사정이 그래도 나았으나, 대동소이하였다.

원로 왕족 몇몇이 도왕을 찾아가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오기가 지금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왕실을 무시하고 정치는 제멋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에는 왕은 없고 오기만 있습니다. 어찌하여 왕께서는 타국에서 흘러든 자의 말을 믿고 국정을 맡기십니까?"

 

"정승은 지금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중이요, 이제까지 누구도 정승과 같은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 없었소, 지금 초나라는 모든 제후들을 호령하고 있소, 장왕 이래로 지금 같은 때는 없었소."

 

왕족들은 혹을 떼러 갔다 오히려 왕의 오기에 대한 두터운 신임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오기가 초나라에 온지 어느덧 10년째이다.

초도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때 오기는 즉시 궁정으로 달려갔으나, 태자는 변방을 순시 중이었다.

도왕의 죽음이 알려지자, 그동안 물밑에서 수작을 꾸미던 왕족과 공족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수백 명이 궁정으로 들이 닥쳤다.

드디어 도왕의 시신이 있는 빈전殯殿에 까지 몰린 오기는 더 이상 달아날 수 없었다. 삼면에 왕족과 공족이 몰려들어 오기를 죽이려 했다.

오기는 마지막으로 원수를 갚을 생각을 했다.

몰려든 왕족과 공족들은 즉시 활을 들어오기를 향해 쏘았다.

수백발의 화살이 오기를 향해 날았다.

오기는 화살을 맞으면서 도왕의 시체위로 넘어졌다.

화살은 계속 날아와서 오기는 고슴도치처럼 되어 죽어갔고, 도왕의 시신에도 화살은 많이 꽂혔다.

곡절 많은 오기의 일생은 여기서 끝이 났다. 미천한 신분에서 왕을 제외한 최고의 신분으로 상승한 오기는 꿈은 이루었으나 말로가 비참했다.

 

도왕의 뒤를 이어 태자 웅장熊臧이 왕위를 이으니 이가 숙왕肅王이다.

숙왕은 부왕의 시신에 활을 쏜 왕족 공족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모두 참형에 처했다.

오기는 죽어서도 원수는 갚은 셈이다.

 

오자병법은 모두 44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형태별로 나누어 보면 제 삼자의 입장에서 서술체형식으로 쓴 것이 3개, ‘오자왈’의 형식으로 쓴 것이 19개, 무후와의 문답형식으로 쓴 것이 22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