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二 爲學 3. 성인(聖人)은 날 때부터 아는 것이 아니다.

강병현 2014. 7. 23. 21:34

卷二 爲學 3. 성인(聖人)은 날 때부터 아는 것이 아니다.

 

 

或問(혹문)

어떤 사람이 묻기를,

聖人之門(성인지문) 其徒三千(기도삼천)

"공자의 문하(門下)에, 제자가 300명이 있었는데,

獨稱顔子爲好學(독칭안자위호학)

오직 안자(顔子)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夫詩書六藝三千子(부시서육예삼천자)

대체로 시(詩)·서(書)와 육예(六藝)에 있어서도 3000명의 제자가,

非不習而通也(비불습이통야)

이것을 학습하여 통달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然則顔子所獨好者(연즉안자소독호자) 何學也(하학야)

그런데 안자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한 것은, 어떤 학문입니까?" 하였다.

伊川先生曰(이천선생왈)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學以至聖人之道也(학이지성인지도야)

"그 학문이란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도(道)이다"하니,

聖人可學而至歟(성인가학이지여)

"성인의 경지란 배워서 될 수 있는 것입니까?"하고 다시 묻자,

曰(왈) 然(연)

대답 하시기를, "그렇다"고 하셨다.

學之道如何(학지도여하)

"배워서 성인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하니,

曰(왈)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天地儲精(천지저정)

"하늘과 땅이 정기(精氣)를 축적하므로,

得五行之秀者爲人(득오행지수자위인)

오행(五行)중의 우수한 것을 받으면 사람으로 된다.

其本也(기본야) 眞而靜(진이정)

그 근본은, 진실하고 고요한 것이다.

其未發也(기미발야) 五性具焉(오성구언)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오성(五性)을 갖추고 있는데,

曰仁義禮智信(왈인의예지신)

말하여 인(仁)·義(의)·禮(예)·智(지)·信(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形旣生矣(형기생의)

형체가 이미 이루어지면,

外物觸其形而動其中矣(외물촉기형이동기중의)

외물(外物)이 그 형체에 접촉하여 그 본성을 움직인다.

其中動而七情出焉(기중동이칠정출언)

그 본성이 움직이면 칠정(七情)이 나오는 것이니,

曰喜怒哀懼愛惡欲(왈희노애구애오욕)

말하여 喜(희)·怒(노)·哀(애)·懼(구)·惡(오)·欲(욕)이라고 하는 것이다.

情旣熾而益蕩(정기치이익탕) 其性鑿矣(기성착의)

정이 이미 왕성해져서 더욱 방탕하게 되면, 그 본성이 훼손된다.

是故覺者約其情使合於中(시고각자약기정사합어중)

그러므로 도리를 깨달은 자는 그 정을 단속하여 사리에 맞도록 하고,

正其心養其性(정기심양기성)

그 마음을 바르게 하며 그 성(性)을 길러 나간다.

愚者則不知制之(우자즉부지제지)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정(情)을 억제할 줄 모른다.

縱其情而至於邪僻(종기정이지어사벽)

그 정을 방종하게 하여 사악한 곳으로 가게하고,

梏其性而亡之(곡기성이망지)

그 본성을 구속해서 망치고 만다.

然學之道(연학지도) 必先明諸心(필선명제심) 知所往(지소왕)

그러나 학문의 도는, 먼저 성(性)을 마음에 분명하게 하고, 갈 곳을 안다.

然後力行以求至(연후력행이구지)

그리고 나서 노력하여 성인의 도에 도달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所謂自明而誠也(소위자명이성야)

이것이 이른바 선(善)의 밝은 데로부터 성(誠)에 이른다는 것이다.

誠之之道(성지지도) 在乎信道篤(재호신도독)

마음을 성실하게 하는 방법은, 도를 믿는 것을 도탑게 하는 데 있다.

信道篤(신도독) 則行之果(즉행지과)

도를 믿는 것이 도타우면, 곧 행하는 것이 과감해질 것이며,

行之果(행지과) 則守之固(즉수지고)

행하는 것이 과감해 지면, 도를 견고하게 지킬 수가 있다.

仁義忠信不離乎心(인의충신불리호심)

그리고 仁(인)·義(의)·忠(충)·信(신)의 덕은 마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아

造次必於是(조차필어시)

잠깐 사이에도 반드시 도에 따르게 되며,

顚沛必於是(전패필어시)

어떠한 때라도 반드시 도에 따르고,

出處語黙必於是(출처어묵필어시)

처신하는 것과 말을 하는 데도 반드시 도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久而弗失(구이불실) 則居之安(즉거지안)

이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잃지 않으면, 삶이 편안해 지고,

動容周旋中禮(동용주선중례)

행동과 응대가 모두 예(禮)에 맞으며,

而邪僻之心(이사벽지심) 無自生矣(무자생의)

간사하고 편벽된 마음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故顔子所事(고안자소사) 則曰非禮勿視(즉왈비례물시)

그러므로 안자(顔子)가 하던 일은,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를 말고,

非禮勿聽(비례물청) 非禮勿言(비례물언)

예(禮)가 아닌 것은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非禮勿動(비례물동)

예(禮)가 아닌 것은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仲尼稱之則曰(중니칭지즉왈) 得一善(득일선)

공자가 칭찬하여 말하기를, ‘하나의 선(善)을 얻으면,

則拳拳服膺而不失之矣(즉권권복응이불실지의)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여 잃지 않도록 한다.’고 하였다.

又曰(우왈)

또 말하기를,

不遷怒(불천노) 不貳過(불이과)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으며,

有不善(유불선) 未嘗不知(미상부지)

선(善)에 어긋남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었으며,

知之(지지) 未嘗復行也(미상복행야)

그것을 알았으면, 반드시 반복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此其好之篤(차기호지독) 學之之道也(학지지도야)

이것이 배우는 것을 좋아함이 독실한 것이며, 배우는 도이기도 한 것이다.

然聖人則不思而得(연성인즉불사이득)

그러나 성인(聖人)은 생각하지 않고서도 터득하고,

不勉而中(불면이중)

힘쓰지 않고서도 도에 합당한 것이다.

顔子則必思而後得(안자즉필사이후득)

안자는 반드시 생각한 뒤라야 터득하고,

必勉而後中(필면이후중) 其與聖人相去一息(기여성인상거일식)

노력한 뒤라야 도에 맞았으니, 성인과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所未至者(소미지자) 守之也(수지야)

안자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지키기는 하였으나,

非化之也(비화지야)

완전히 성인으로 변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以其好學之心(이기호학지심) 假之以年(가지이년)

그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으로써, 삶을 빌려 주어 오래 살게 하였다면,

則不日而化矣(즉불일이화의)

얼마 안가서 성인(聖人)으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後人不達(후인부달)

후세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以謂聖本生知(이위성본생지)

성인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도를 아는 것이지,

非學可至(비학가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들 있다.

而爲學之道遂失(이위학지도수실)

그리하여 학문의 도를 마침내 잃어 버리니,

不求諸己而求諸外(불구제기이구제외)

자기에게서 구하지 않고 밖에서 이를 구하고자,

以博聞强記(이박문강기) 巧文麗辭爲工(교문려사위공)

많이 듣고 많이 기억하며, 교묘한 글과 아름다운 문장만의 능함을 삼고,

榮華其言(영화기언) 鮮有至於道者(선유지어도자)

말을 화려하게 잘도 꾸민다. 이러고서는 도에 이르는 사람은 드물다.

則今之學(즉금지학) 與顔子所好異矣(여안자소호이의)

오늘날의 학문은, 안자가 좋아하던 것과는 다르다’고 하셨다.

          <이천문집(伊川文集)> 제4(第四) 안자소호향학론(顔子所好向學論)

이천 선생은 18세때인 황우(皇祐) 2년에 태학(太學)에 유학하였는데, 당시에 국자감 직강(直講)으로 있었던 호안정(胡安定)이 이 글제로서 학생들을 시험 하였다. 이때 이천 선생이 이 논문을 써서 호안정 선생의 칭찬을 받게된 글이라고 전한다. 성인(聖人)은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이므로 배워서 되는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말에 대하여 타당치않음을 논하였던 것이다. 안자의 행동과 힘써 배우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안자와 같이 참된배움에 힘을 기울인다면 성인(聖人)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