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二 爲學 4. 오직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橫渠先生問於明道先生曰(횡거선생문어명도선생왈)
횡거 선생이 명도 선생에게 묻기를,
定性未能不動(정성미능부동)
"본성(本性)을 안정시키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게 할 수 없고,
猶累於外物(유누어외물) 何如(하여)
오히려 외물(外物)에 이끌리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였다.
明道先生曰(명도선생왈)
명도 선생이 말하기를,
所謂定者(소위정자)
"소위 정(定)이라는 것은,
動亦定(동역정) 靜亦定(정역정)
움직일 때에도 안정해 지고, 고요한 때에도 또한 안정해 지는 것입니다.
無將迎(무장영) 無內外(무내외)
과거나 미래의 일에 구애받는 것도 없고, 안과 밖도 없는 것이니,
苟以外物爲外(구이외물위외) 牽己而從之(견기이종지)
만약 외물의 밖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성품을 이끌어서 따르게 한다면,
是以己性爲有內外也(시이기성위유내외야)
그것은 자신의 성품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입니다.
且以性爲隨物於外(차이성위수물어외)
또 성품을 외부에 있어서 물(物)에 따르는 것이라 한다면,
則當其在外時(즉당기재외시) 何者爲在內(하자위재내)
성품이 밖에 있을 때에는, 무엇이 안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是有意於絶外誘(시유의어절외유)
이는 밖에서 오는 유혹을 끊으려는 뜻이 있으면서도,
而不知性之無內外也(이부지성지무내외야)
성품에 안과 밖이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旣以內外爲二本(기이내외위이본)
이미 안과 밖으로써 두 개의 근본을 삼는다면,
則又烏可遽語定哉(즉우오가거어정재)
어찌 정(定)을 말할 수가 있으리까?
夫天地之常(부천지지상)
무릇 천지의 상도는,
以其心普萬物而無心(이기심보만물이무심)
그 마음이 만물에 두루 미쳐서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며,
聖人之常(성인지상)
성인의 상도는,
以其情順萬事而無情(이기정순만사이무정)
그 정(情)이 만사에 순응하여 사정(私情)이 없기 때문이니,
故君子之學(고군자지학) 莫若擴然而大公(막약확연이대공)
군자의 학문은, 확연히 공정하여,
物來而順應(물래이순응)
만사 사물이 왔을 때 그대로 받아 들여 따를 뿐입니다.
易曰(역왈)
<주역>에 말하기를,
貞吉悔亡(정길회망)
‘정(貞)하면 길(吉)하고 뉘우침이 없다.
憧憧往來(동동왕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
朋從爾思(붕종이사)
네 마음에 따르는 것은 같은 무리뿐이다’하였습니다.
苟規規於外誘之除(구규규어외유지제)
진실로 밖의 유혹을 제거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면,
將見滅於東而生於西也(장견멸어동이생어서야)
밖에서 오는 유인이 동쪽에서 없어지면 서쪽에서 생기게 될 것입니다.
非惟日之不足(비유일지부족)
이렇게 되면 날마다 밖에서 오는 유혹을 없애기 위한 힘이 부족할 뿐 아니라,
顧其端無窮(고기단무궁)
밖에서 오는 유혹의 실마리가 무궁하여,
不可得而除也(불가득이제야)
이것을 다 제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人之情各有所蔽(인지정각유소폐)
사람의 정에는 각기 가려지는 곳이 있기 때문에,
故不能適道(고불능적도)
그러므로 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大率患在於自私而用智(대솔환재어자사이용지)
대개 이것은 사사로운 마음과 약은 지혜를 쓰기 때문입니다.
自私則(자사즉)
사사로운 마음에 치우치게 되면,
不能以有爲爲應迹(불능이유위위응적)
모든 인사에 있어서 일에 응하여 행할 수가 없고,
用智則不能以明覺爲自然(용지즉불능이명각위자연)
약은 지혜를 쓰면 밝게 깨달아서 자연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今以惡外物之心(금이악외물지심)
이제 외물의 영향을 싫어하는 마음으로써,
而求照無物之地(이구조무물지지)
외물의 영향이 없기를 구하려는 것은,
是反鑑而索照也(시반감이삭조야)
이것은 마치 거울을 뒤집어 놓고 물건을 비추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易曰(역왈)
<주역>에 말하기를,
艮其背(간기배) 不獲其身(불획기신)
‘그 등을 돌이키니, 그 몸을 얻지 못하고,
行其庭(행기정) 不見其人(불견기인)
그 뜰에 걸어도 그 곳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孟子亦曰(맹자역왈)
<맹자>에 또한 말하기를,
所惡於智者(소오어지자)
‘약은 지혜를 미워하는 것은,
爲其鑿也(위기착야)
너무 깊이 파고들어 가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
與其非外而是內(여기비외이시내)
외물을 그르다 하고 안을 바르다 하는 것은,
不若內外之兩忘也(불약내외지양망야)
마음인 안과 물건인 밖을 둘다 잊어버린 것만 같지 못한 것입니다.
兩忘則澄然無事矣(양망즉징연무사의)
두 가지를 모두 잊으면 마음은 아주 맑고 깨끗하여 일이 없게 되고,
無事則定(무사즉정) 定則明(정즉명)
일이 없으면 마음은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이치가 밝아지고,
明則尙何應物之爲累哉(명즉상하응물지위누재)
이치가 밝아지면 어찌 사물의 응대로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있겠습니까?
聖人之喜(성인지희) 以物之當喜(이물지당희)
성인이 기뻐할 때에는, 사물의 마땅한 기쁨이며,
聖人之怒(성인지노) 以物之當怒(이물지당노)
성인이 노여워 할 때에는, 사물의 마땅한 노여움입니다.
是聖人之喜怒(시성인지희노)
이처럼 성인이 기뻐하고 노여워 하는 것은,
不繫於心(불계어심)
자기의 마음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而繫於物也(이계어물야)
사물에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是則聖人豈不應於物哉(시즉성인기불응어물재)
이와 같은즉 성인에게 어찌 사물에 응하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烏得以從外者爲非(오득이종외자위비)
어찌 밖에 쫓는 것을 잘못이라 하고,
而更求在內之爲是也(이경구재내지위시야)
다시 안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만 옳다고 하겠습니까?
今以自私用智之喜怒(금이자사용지지희노)
이제 사심(私心)과 약은 지혜를 써서 기뻐하고 노여워 하는 것으로써,
而視聖人喜怒之正(이시성인희노지정) 爲何如哉(위하여재)
정당한 성인의 희노(喜怒)에 비하다니, 이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夫人之情(부인지정) 易發而難制者(이발이난제자)
대체로 사람이 감정중에서, 쉽게 일어나고 제어(制御)하기 어려운 것은,
惟怒爲甚(유노위심) 第能於怒時(제능어노시)
오직 노여워 하는 감정이 심한 것입니다. 다만 성이 날 때,
遽忘其怒(거망기노) 而觀理之是非(이관리지시비)
급히 그 노여워 함을 잊어 버리고, 그 이치의 옳고 그름을 바로 본다면,
亦可見外誘之不足惡(역가견외유지불족악)
또한 밖의 유혹이 족히 미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而於道亦思過半矣(이어도역사과반의)
도에 있어서도 또한 그 태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명도문집(明道文集)> 제3(第三) 답횡거장선생서(答橫渠張先生書)
사물은 안과 밖의 물(物)이 있을수 없고 자신의 성(性)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오직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본 항(項)은 장횡거(張橫渠: 載)가 정성(定性)에 대하여 물은 것에 대한 명도 선생의 답서이다. 이 글은 명도 선생이 23세때 쓴것으로 당시의 횡거 선생은 명도 선생보다12세 연상이었으나, 학문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와같이 명도선생과 이천선생은 가까웠으며, 서로간에 학문적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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