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完]

맹자(孟子) 만장장구 하(萬章章句 下) 7. 往見不義也(왕견불의야)

강병현 2014. 8. 20. 14:45

맹자(孟子) 만장장구 하(萬章章句 下) 7. 往見不義也(왕견불의야)

 

萬章曰敢問不見諸侯(만장왈감문불견제후)는

만장이 이르기를,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 제후를 만나시지 않는 것은

何義也(하의야)잇고

무슨 뜻에서이십니까? 하고 말씀드리자,

孟子曰在國曰市井之臣(맹자왈재국왈시정지신)이요

맹자께서 이르기를, 도시에 있으면 시정지신(市井之臣)이라 하고,

在野曰草莽之臣(재야왈초망지신)이라

초야에 있으면 초망지신(草莽之臣)이라고 하는데,

皆謂庶人(개위서인)이니

그러한 사람들을 다 서인이라고 부른다.

庶人(서인)이

서인은

不傳質爲臣(불전질위신)하여는

국군을 만나 헌상품(獻上品)을 전달하여 신하가 되지 않는 한

不敢見於諸侯(불감견어제후)가

감히 제후를 만나보지 못하는 것이

禮也(례야)니라

예다. 라고 말씀하셨다.

萬章曰庶人(만장왈서인)이

만장이 이르기를, 서인은

召之役(소지역)이면

부역에 부르면

則往役(칙왕역)하고

가서 역사(役事)를 하옵는데,

君欲見之(군욕견지)하여

국군이 만나고 싶어서

召之(소지)면

그를 부르면

則不往見之(칙불왕견지)는

가서 만나지 않는 것은

何也(하야)잇고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말씀드리자,

曰往役(왈왕역)은

말씀하시기를, 가서 역사를 하는 것은

義也(의야)요

의고,

往見(왕견)은

가서 만나는 것은

不義也(불의야)니라

불의다.

且君之欲見之也(차군지욕견지야)는

또 국군이 그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은

何爲也哉(하위야재)오

무엇 때문인가?

曰爲其多聞也(왈위기다문야)며

이르기를, 그가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고,

爲其賢也(위기현야)니이다

그가 현량한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曰爲其多聞也(왈위기다문야)인댄

이르기를, 그가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면,

則天子(즉천자)도

천자도

不召師(불소사)온

스승을 불러가지 않는데

而況諸侯乎(이황제후호)아

하물며 제후가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느냐?

爲其賢也(위기현야)인댄

그가 현량한 인재이기 때문이라면,

則吾未聞欲見賢(칙오미문욕견현)

나는 여태까지 현량한 인재를 만나보고 싶어서

而召之也(이소지야)로라

그를 불러갔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繆公(무공)이

노 무공(繆公)이

亟見於子思(극견어자사)하고

자주 자사를 만나보고

曰古(왈고)에

이르기를, “옛날에

千乘之國(천승지국)이

천 승(千乘)의 나라 국군이

以友士(이우사)하니

사(士)를 벗으로 사귀는 것이

何如(하여)하니잇고

어떠했습니까?” 하고 말했다.

子思不悅曰古之人(자사불열왈고지인)이

자사께서 그 말을 좋아하지 않고 이르기를, “옛 사람이

有言曰事之云乎(유언왈사지운호)언정

말이 있어 이르기를, '섬긴다'고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豈曰友之云乎(기왈우지운호)리오하시니

어찌 벗으로 사귄다고 말씀하십니까?” 하고 말씀하셨다.

子思之不悅也(자사지불열야)는

자사께서 좋아하시지 않은 것은,

豈不曰以位則子(기불왈이위즉자)는

어찌 말하지 않습니까, “지위로 하자면 당신은

君也(군야)요

국군이고

我(아)는

나는

臣也(신야)니

신하인데

何敢與君友也(하감여군우야)며

어찌 감히 국군과 벗이 되겠소?

以德則子(이덕즉자)는

덕으로 하자면 당신은

事我者也(사아자야)니

나를 섬기는 사람인데

奚可以與我友(해가이여아우)리오

어떻게 나하고 벗이 될 수 있겠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千乘之君(천승지군)이

천 승의 나라 국군이

求與之友(구여지우)로되

그와 벗이 되어주기를 요구하였는데도

而不可得也(이불가득야)하니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而況可召與(이황가소여)아

하물며 불러갈 수야 있겠느냐?

齊景公(제경공)이

제 경공이

田(전)할새

사냥을 나가서는

招虞人以旌(초우인이정)한대

깃기(旌)로 신호를 하여 원유(苑囿)지기를 불렀는데

不至(부지)어늘

오지 않아서

將殺之(장살지)러니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志士(지사)는

“지사(志士)는

不忘在溝壑(불망재구학)이요

구렁에 던져져 죽기를 잊지 않고,

勇士(용사)는

용사(勇士)는

不忘喪其元(불망상기원)이라하시니

제 머리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孔子(공자)는

공자께서는

奚取焉(해취언)고

어느 점을 취하셨던 것이겠느냐?

取非其招不往也(취비기초불왕야)시니라

정당한 신호로 부르는 것이 아니면 가지 않은 점을 취하신 것이다.

曰敢問招虞人何以(왈감문초우인하이)니잇고

이르기를, 감히 여쭈어보겠습니다.

원유지기를 부르는 데는 무엇으로 신호를 합니까?

曰以皮冠(왈이피관)이니

이르기를, 피관(皮冠)으로 신호를 한다.

庶人(서인)은

서인에게는

以旃(이전)이요

붉은 깁기(旃)로 신호를 하고,

士(사)는

사(士)에게는

以旂(이기)요

용기(龍旗)로 신호를 하고,

大夫(대부)는

대부에게는

以旌(이정)이니라

깃기(旌)로 신호를 한다.

以大夫之招(이대부지초)로

대부의 부르는 신호로

招虞人(초우인)이어늘

원유지기를 불렀으니

虞人(우인)이

원유지기는

死不敢往(사불감왕)하니

죽어서도 감히 가지 못했던 것이다.

以士之招(이사지초)로

사(士)를 부르는 신호로

招庶人(초서인)이면

서인을 부른다면

庶人(서인)이

서인이

豈敢往哉(기감왕재)리오

어찌 감히 가겠느냐?

況乎以不賢人之招(황호이불현인지초)로

하물며 현량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 방법으로

招賢人乎(초현인호)아

현량한 인재를 불러야 하는가.

欲見賢人而不以其道(욕견현인이불이기도)면

현량한 인재를 만나고 싶어하면서

그것에 맞는 정당한 방법을 가지고 부르지 않는다면,

猶欲其入而閉之門也(유욕기입이폐지문야)니라

그것은 마치 그 사람을 들어오게 하려면서 문을 닫아버리는 거와도 같은 것이다.

夫義(부의)는

의는

路也(노야)요

길이고,

禮(예)는

예는

門也(문야)니

문이다.

惟君子能由是路(유군자능유시로)하며

오직 군자만이 그 길로 해서

出入是門也(출입시문야)니

그 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詩云周道如底(시운주도여저)하니

《시경(詩經)》에 주나라의 길은 숫돌 같고

其直如矢(기직여시)로다

그 곧기는 화살 같다.

君子所履(군자소리)요

군자가 밟고 가는 곳이고

小人所視(소인소시)라하니라

소인이 보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萬章曰孔子(만장왈공자)는

만장이 이르기를, 공자께서는

君命召(군명소)어시든

국군이 명령을 내려서 부르면

不俟駕而行(불사가이행)하시니

수레를 말에 매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然則孔子(연칙공자)는

그러면 공자께서는

非與(비여)잇가

잘못이었습니까? 하고 말씀드리자,

曰孔子(왈공자)는

이르기를, 공자께서

當仕有官職而以其官召之也(당사유관직이이기관소지야)니라

벼슬 사실 적에 관직이 있으면서 그 관직에 맞는 방법으로 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