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자韓非子]第四十三篇定法 : 법이나 술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강병현 2020. 3. 2. 22:04

[한비자韓非子]第四十三篇定法 : 법이나 술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韓非子 第43篇 定法2]-

 

問者曰: (문자왈)" 徒術而無法, (도술이무법)

어떤 사람이 다시 물었다. “다만 술() 뿐으로 법을 따르지 않고,

 

徒法而無術, (도법이무술) 其不可何哉? "(기불가하재)

다만 법() 뿐으로 술을 수반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對曰: (대왈)" 申不害, (신불해) 韓昭侯之佐也(한소후지좌야)

한비자가 다시 대답했다. “신불해는 한나라 소후의 보좌역이었습니다.

 

韓者, (한자) 晉之別國也(진지별국야)

한나라는 진나라에서 나뉘어진 나라입니다.

 

晉之故法未息, (진지고법미식) 而韓之新法又生; (이한지신법우생)

진나라의 구법이 효력이 잃기 전에 한나라의 신법이 새로 생기고,

 

先君之令未收, (선군지령미수)

앞 대 군주의 명령이 없어지기 전에

 

而後君之令又下(이후군지령우하)

후대 군주의 명령이 다시 내려지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申不害不擅其法, (신불해불천기법) 不一其憲令, (불일기헌령)

이때에 신불해는 법률과 명령의 신구 어느편도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則姦多(즉간다)

간신들은 사고를 일으킨 자가 많았습니다.

 

故利在故法前令, (고리재고법전령) 則道之; (즉도지)

그러니까. 간신들은 구법이나 구령에 따르는 것이 이익이 되면 그것에 따랐고,

 

利在新法後令, (이재신법후령) 則道之(즉도지)

신법이나 새로운 명령에 따르는 것이 이익이 되면 그것을 따른 것입니다.

 

利在故新相反, (이재고신상반)

이와같이 신구의 법령이 서로 반대였거나,

 

前後相悖, (전후상패)

전후의 명령이 서로 상치되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 그들이 이익이 되는 형편에서,

 

則申不害雖十使昭侯用術, (즉신불해수십사소후용술)

신불해가 비록 열 차례나 소후에게 술()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하더라도

 

而姦臣猶有所譎其辭矣(이간신유유소휼기사의)

간신들은 역시 거짓말을 했을 것입니다.

 

故託萬乘之勁韓, (고탁만승지경한)

그래서 신불해는 만승의 강대한 국가인 한나라에

 

七十年而不至於霸王者, (칠십년이부지어패왕자)

17년 간이나 그 몸을 의탁하고 있으면서,

 

雖用術於上, (수용술어상) 法不勤飾於官之患也(법불근식어관지환야)

한왕이 패왕이 되지 못한 것은, 통제의 술이 위에서 사용되고 있었는데

법률이 관리를 고무 격려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公孫鞅之治秦也(공손앙지치진야),

공손앙이 진나라를 다스리는데는

 

設告相坐而責其實(설고상좌이책기실),

고발과 연좌의 법을 제정하여 백성들이 숨기지 못하도록 하고,

 

連什伍而同其罪(연십오이동기죄),

열 집 내지 다섯 집으로 반을 편성하여 그 반에 소속된 자는

그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같은 죄로 다른 자도 처벌당했으며,

 

賞厚而信(상후이신),

상을 후하게 하여 실수 없이 수여했고,

 

刑重而必(형중이필)

형벌을 무겁게 하여 반드시 행하도록 했습니다.

 

是以其民用力勞而不休(시이기민용력로이불휴),

그래서 백성은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고, 피로해도 쉬지 않았고,

 

逐敵危而不却(축적위이불각),

적을 추격할 때는 위험이 닥쳐와도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故其國富而兵强(고기국부이병강);

그 때문에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룩한 것입니다.

 

然而無術以知姦(연이무술이지간),

그러나 통어(通御)의 술에 의해서 신하의 간악을 통찰하지 못했다면

 

則以其富强也資人臣而已矣(즉이기부강야자인신이이의)

그 부강함은 대신들의 이익이 되었을 것입니다.

 

及孝公(급효공) · 商君死(상군사), 惠王卽位(혜왕즉위),

진나라 효공과 상군이 죽은 다음에 혜왕이 왕위에 올랐는데

 

秦法未敗也(즉법미패야),

진나라의 법은 아직도 효력이 있었습니다.

 

而張儀以秦殉韓(이장의이진순한) · ()

그리고 장의는 진나라의 힘에 의해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하고,

 

惠王死(혜왕사), 武王卽位(무왕즉위),

혜왕이 죽고 무왕이 왕위에 오르자

 

甘茂以秦殉周(감무이진순주)

감무는 진나라의 힘에 의해서 주나라를 정복했습니다.

 

武王死(무왕사), 昭襄王卽位穰侯越韓(소양왕즉위양후월한) ·

무왕이 죽고 소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양후는 한나라와

 

魏而東攻齊(위이동공제),

위나라를 넘어 동쪽으로 진격하여 제나라를 공략했지만

 

五年而秦不益一尺之地(오년이진불익일척지지),

5년이 경과해도 한치의 땅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乃成其陶邑之封(내성기도읍지봉)

그래도 양후는 도음의 자기 영토에 성을 축조했으며,

 

應侯攻韓八年(응후공한팔년),

응후는 한나라를 공격하기를 8년 동안 했으며,

 

成其汝南之封(성기여남지봉)

여남의 자기 영토에 성을 축조했습니다.

 

自是以來(자시이래), 諸用秦者皆應(제용진자개응), 穰之類也(양지류야)

그 후 진나라를 섬긴 자는 누구나 응후나 양후와 같았습니다.

 

故戰勝(고전승), 則大臣尊(즉대신존);

그러므로 진나라에서는 전쟁에 승리한 자가 존경을 받았으며,

 

益地(익지), 則私封立(즉사봉립) "

영토를 확장하면 신하의 사령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主無術以知姦也(주무술이지간야)

이렇게 된 것은 군주에게 신하의 간악함을 통찰하는 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商君雖十飾其法(상군수십식기법),

비록 상군이 열 차례나 법을 장려했다 하더라도

 

人臣反用其資(인신반용기자)

신하는 오히려 그 이익을 자기 것으로 할 따름이었습니다.

 

故乘强秦之資數十年而不至於帝王者(고승강진지자수십년이부지어제왕자),

그래서 진나라 군주들은 강력한 진나라의 실력을 수십 년이나 배경으로 하면서도 제왕이 되지 못한 것은,

 

法不勤飾於官(법불근식어관),

법률로 관리를 독려했지만,

 

主無術於上之患也(주무술어상지환야)

군주가 통어술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재난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