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思錄

卷六 家道 17. 학문보다 직책을 먼저 수행하라

강병현 2016. 10. 11. 15:49

卷六 家道 17. 학문보다 직책을 먼저 수행하라

 

 

先公太中(선공태중) 諱珦(휘향) 字伯溫(자백온)

선친 태중공(太中公), 이름은 향()이며, 자는 백온(伯溫)이다.

前後五得任子(전후오득임자)

앞뒤로 다섯 번이나 임자(任子)가 되어,

以均諸父子孫(이균제부자손)

사촌과 조카들을 추천하여 고르게 벼슬에 임관시켰다.

嫁遺孤女(가유고녀) 必盡其力(필진기력)

부모가 없는 딸아이를 시집보낼 때에는, 반드시 그 힘을 다하였으며,

所得俸錢(소득봉전) 分贍親戚之貧者(분섬친척지빈자)

자기가 받은 녹봉은, 가난한 친척에게 나누어 주었다.

伯母劉氏寡居(백모유씨과거) 公奉養甚至(공봉양심지)

백모 유씨(劉氏)가 과부가 되니, ()이 봉양하기를 지극히 하였으며,

其女之夫死(기녀지부사) 公迎從女兄(공영종녀형)

그녀의 사위가 죽자, 공은 백모의 딸을 데리고 돌아 오셨는데,

以歸敎養其子均於子妷(이귀교양기자균어자질)

그 아들을 가르치고 기르기를 자기의 아들이나 조카와 같이 하였다.

旣而女兄之女又寡(기이여형지녀우과)

그러는 동안에 누이의 딸이 또 과부가 되니,

公懼女兄之悲思(공구여형지비사)

공은 누이가 슬퍼할 것을 걱정하여,

又取甥女(우취생여) 以歸嫁之(이귀가지)

또 생질녀를 데려다가, 시집을 보냈다.

時小官祿薄(시소관록박) 克己爲義(극기위의)

그때는 벼슬이 낮아 녹봉이 적었으나, 자기를 이기고 의리를 다하였으니,

人以爲難(인이위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公慈恕而剛斷(공자서이강단)

공의 성품은 자애롭고 너그러웠으며 결단이 강하였다.

平居(평거) 與幼賤處(여유천처)

평소에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하고 함께 있을 때에도,

惟恐有傷其意(유공유상기의)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조심하다가도,

至於犯義理(지어범의리) 則不假也(칙불가야)

그들이 의리를 범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용서하지 않았다.

左右使令之人(좌우사령지인) 無日不察其饑飽寒燠(무일불찰기기포한욱)

그리고 좌우에 부리는 사람들의, 의식을 살피지 않는 날이 없었다.

娶侯氏(취후씨) 侯夫人事舅姑(후부인사구고)

선친은 후씨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후부인은 시부모를 잘 섬겨,

以孝勤稱(이효근칭)

효도와 삼가는 것으로써 칭찬을 받았으며,

與先公(여선공) 相待如貧客(상대여빈객)

선공과 서로 대하는 것은 마치 주인과 손님 같았다.

先公賴其內助(선공뢰기내조) 禮敬尤至(례경우지)

선공께서는 그 내조에 힘입어서, 예경(禮敬)이 더욱 지극하였다.

而夫人謙順自牧(이부인겸순자목)

부인은 겸양과 순종으로써 스스로를 기르니,

雖小事(수소사) 未嘗專(미상전)

비록 사소한 일일 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고,

必稟而後行(필품이후행) 仁恕寬厚(인서관후)

반드시 여쭈어서 행하였다. 성품은 어질고 너그러웠으며,

撫愛諸庶不異己出(무애제서불이기출)

여러 서자를 사랑하기를 자기 몸에서 난 아들과 차별 없이 하였으며,

從叔幼姑(종숙유고) 夫人存視(부인존시) 常均己子(상균기자)

종숙이나 어린 고모들도 부인이 돌봐 주기를 항상 자기 자식처럼 하였다.

治家有法(치가유법) 不嚴而整(불엄이정)

집안을 다스리는 데는 법도가 있어 엄하지 않아도 정리되었고,

不喜笞扑奴婢(불희태복노비)

노비들을 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視小臧獲(시소장획) 如兒女(여아녀)

어린 종들을 어린 아이들처럼 돌보았다.

諸子或加呵責(제자혹가가책)

여러 아들들 중에 혹 노비를 욕하고 꾸짖는 자가 있으면,

必戒之曰(필계지왈)

반드시 훈계하여 이르기를,

貴賤雖殊(귀천수수) 人則一也(인칙일야)

귀천은 비록 다르지만, 사람은 다 마찬가지이다.

汝如是大時(여여시대시) 能爲此事否(능위차사부)

네가 이 애만 했을 때, 능히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느냐?” 하였다.

先公凡有所怒(선공범유소노) 必爲之寬解(필위지관해)

선공께서 노여워하실 때가 있어도, 반드시 그것을 너그럽게 풀도록 하였으나,

唯諸兒有過(유제아유과) 則不掩也(칙불엄야)

오직 자기 아들들 중에 잘못이 있을 때에는, 그냥 덮어두지 않았다.

常曰(상왈)

항상 말씀 하시기를,

子之所以不肖者(자지소이불초자)

자식이 불초(不肖)하게 되는 것은,

由母蔽其過而父不知也(유모폐기과이부불지야)

어미가 그 잘못을 덮어주어 아비가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였다.

夫人男子六人(부인남자육인) 所存惟二(소존유이)

부인에게는 아들 여섯이 있었는데, 살아 있는 아들은 오직 둘 뿐이었으니,

其愛慈可謂至矣(기애자가위지의)

그 사랑과 자애는 지극하였다 할 것이다.

然於敎之之道(연어교지지도) 不少假也(불소가야)

그러나 가르치는 도는, 조금도 용서함이 없었다.

纔數歲(재수세) 行而或踣(행이혹북) 家人走前扶抱(가인주전부포)

겨우 두세 살 때 걷다가 넘어지면, 집안사람들이 달려가서 안아 일으키며,

恐其驚啼(공기경제) 夫人未嘗不呵責曰(부인미상부가책왈)

놀라서 울까봐 두려워하였으나, 부인은 꾸짖어 나무라기를,

汝若安徐(여약안서) 寧至踣乎(녕지북호)

네가 만약 안전하게 서서히 걸었다면, 어찌 넘어질 리가 있겠느냐하였다.

飮食常置之坐側(음식상치지좌측)

음식을 먹을 때에는 언제나 곁에 앉아,

常食絮羹(상식서갱) 卽叱止之曰(즉질지지왈)

음식에 간을 맞추거나 하면, 꾸짖어 못하게 하고 말하기를,

幼求稱欲(유구칭욕) 長當何如(장당하여)

어려서부터 제 입에 맞게 하면, 앞으로 자란 뒤에 어떻게 하겠느냐.” 하였다.

雖使令輩(수사령배) 不得以惡言罵之(부득이악언매지)

비록 심부름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나쁜 말로 욕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故頤兄弟平生(고이형제평생) 於飮食衣服(어음식의복)

그러므로 정이(程頤) 형제는 평생토록, 음식이나 의복에 대하여,

無所擇(무소택) 不能惡言罵人(불능악언매인)

가리는 법이 없었고, 나쁜 말로 남을 욕하지 않았는데,

非性然也(비성연야) 敎之使然也(교지사연야)

타고난 본래의 성품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가르쳐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與人爭忿(여인쟁분) 雖直不右曰(수직불우왈)

남들과 다툴 때에는, 비록 옳았어도 옳다고 하지 않고 말하기를,

患其不能屈(환기불능굴)

자기를 굽히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不患其不能伸(불환기불능신)

자기주장을 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하였다.

及稍長(급초장) 常使從善師友游(상사종선사우유)

차츰 성장함에, 항상 훌륭한 스승과 벗을 따라서 놀게 하였다.

雖居貧(수거빈)

비록 가난하게 살았을지라도,

或欲延客則喜而爲之具(혹욕연객칙희이위지구)

혹 손님을 초대하려고 하면 기쁘게 모든 준비를 다하여 주었다.

夫人七八歲時(부인칠팔세시) 誦古詩曰(송고시왈)

부인은 예닐곱 떼에, 고시(古詩)를 외웠는데 말하기를,

女子不夜出(녀자불야출) 夜出秉明燭(야출병명촉)

여자는 밤에 나가지 말아야 하며, 밤에 나갈 때에는 등불을 밝힌다.”하였다.

自是(자시) 日暮則不復出房閤(일모칙불부출방합)

이 때부터, 해가 지면 규방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旣長(기장) 好文而不爲辭章(호문이불위사장)

자라서 글을 좋아 하였으나, 문장을 짓지 않았으며,

見世之婦女(견세지부녀) 以文章筆札傳於人者(이문장필찰전어인자)

세상에 부녀자로서 문장이나 필찰(筆札)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則深以爲非(칙심이위비)

매우 옳지 않게 생각하였다.

    

                                                                            <이천문집(伊川文集)> 제팔편(第八篇)

 

이천선생의 선친 태중공(太中公: 태중은 벼슬이름, 정 이천선생이 태중대부를 지냈음)과 어머니, ()씨 부인의 행실을 기록한 글이다. 두 정씨(程氏)형제의 부모가 집안을 잘 다스렸으며, 특히 어린이에게 어머니가 한 교육법을 칭송하였다.